가면 _ 1

무기력에 대한 고찰

by grassrain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신호를 혼자서만 감지한 듯이 두 눈은 크게 뜬 채 멈춰있다. 그렇지만 시선의 끝은 뭉툭하다. 아무도 없는 낮 시간에 난 그렇게 굳은채 멈춰 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머릿속은 정신없이 바쁘다. 해놓아야 하는 집안의 허드레 일들이 시야에 걸린다. 사람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먹는 것도,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외면한다. 단, 오후 두 시가 되기 전까지 만이다. 격렬하게 가만히 있자. 오후에 다시 만날 아이들을 위해, 밝게 웃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는 중이다. 그러니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좋은 엄마’ 얼굴을 장착한다. 그리고 하루 중 가장 높고 밝은 에너지를 분출한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받고 싶은 게 더 많은 걸까. 더 진하고 강력한 영양분을 빨아먹으려는 듯 나를 끌어당긴다. 오전에 모아두었던 힘들은 금세 바닥난다. 몽땅 소진된 나를 시간의 흐름에 맡긴다. 움직임을 최소화하자. 두 귀만 열어두면 되지. 조금만 기다리자. 남편이 퇴근하고 나면 나는 비로소 멈출 수 있다. 진즉에 방전되어 있던 몸의 전원을 끈다. 이젠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 그리고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책임감에 움직이는 나’

매일, 하루 종일, 시시각각 싸운다.

어린 시절부터 우울한 시간이 길었다는 건 알아왔다. 무기력이 우울로부터 시작된 것 또한 어렴풋이 눈치챘다. 하지만 난 우울하지 않고, 무기력하지 않음을, 그리고 나약하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아무도 관심 없고, 인정해 주지 않는 승부를 치열하게 매기고 있었다.

어떤 내가 더 많이 이겼을까? 지는 것도 이기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이다. 승패를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갈등 없이 잔잔한 날은 언제 올까.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다. 현실에 집중하기 힘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막연한 불안함을 없애보고자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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