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표의 방향이 바뀌었다.
더운 여름, 여름빛에 잠긴 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카페 유리창 너머 움직임을 좇는다.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고 느껴졌다.
무기력을 이기기 위해 무엇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한다는 마음에 아이패드 위로 쓸데없는 선을 몇십 번이나 그려본다. 이렇게 선을 긋다 보면 언젠가 다시금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나올 거라 생각하며. 캔버스엔 그저 선만 남았다. 손목은 아렸고, 마음은 그대로였다. 안될 줄 알았어. 비좁은 아이패드에서 고개를 들어 창 너머를 본다. 나무 하나에는 얼마큼의 나뭇잎이 달려있을까. 바람에 맞춰 이파리 하나하나가 자신만의 춤을 춘다. 여름의 강한 햇빛에 반짝이다가도 다른 이파리에 의해 가려지면 빛의 은혜를 받지 못해 어두워진다. 그러기를 수십 번 반복한다. 그리고 나는 멍한 눈으로 그걸 보라 본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저 바라봤다.
타고나길 감수성이 풍부했다. 애니메이션을 업으로 삼게 되며 물체 하나를 보더라도 수십 가지의 특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나만의 감정을 끌어내는 법을 훈련했다. 나뭇잎이 요동치는 걸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파리들끼리 부닥치는 소리를 들으며 파도를 떠올리는 걸 좋아했다. 얼굴에 드리웠다 사라지는 햇빛의 온기를 느끼며 나뭇잎이 내 가슴을 간지럽히는 걸, 내가 그림을 좋다고 깨닫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랬던 나는 무럭무럭 자라 서울에 혼자 자취를 시작하며 영상 제작회사를 다니다가 우울증이 심해져 퇴사를 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라도 붙잡기 위해 나무를 바라본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두려움이 치고 올라왔다. 나 정말 긍정적인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된 걸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하던 순간에 더 이상 그 무엇도 느끼지 않게 된 거면 정말 내 인생은 무의미해진 것 아닐까. 이런 상태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나.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 아닌가. 너무 두려웠다. 평일 오후 나밖에 없던 고요했던 카페가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음악 소리가 너무 컸고, 추출되던 에스프레소 향기는 지독했고, 오븐에서 부풀어 오르는 케이크 시트의 향기는 끔찍했다. 이런, 또 내 몸이 평온한 순간을 위험상황이라 착각해서 온갖 사이렌을 울려 된다. 공황이 시작된다.
언니가 일본에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내 상태를 알고 있던 언니는 나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정신 차리라고 쏘아붙이는 건 언니의 방식이 아니다. 은근하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게 언니다. 며칠은 내리 고민만 했다. 일본에서 내가 공황이 오면 어떡하나, 호텔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그래도 나는 다시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다.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또는 괴롭게도 했던 나만의 감정을 찾고 싶었다. 어느날, 무기력함이 잠시 자리를 비운 어느날,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갈래.
기본적으로 언니와 따로 다녔다. 언니는 쇼핑이 목적이었고 나는 관광이 목적이었기에 서로 따로 다니기로 합의를 봤다. 물론, 엄마아빠한텐 비밀로 하고.
여러 신사와 작은 마을들을 위주로 다녔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덩그러니 떨어져 의미 모를 단어들이 울려퍼지는 외국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모국에서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보호에서 멀어지면 공포가 나를 찾아올 거라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문을 열고 나를 반겨준 건 해방감이었다. 아무도 널 재단하지 않는 이곳에서 니 맘대로 해-라는 명령어가 날 끌어안았다.
신사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차와 간단한 디저트를 제공해 준다. 짧은 일본어로 감사 인사를 건네면 인자한 미소로 답해준다. 쓴 차를 마시고 생수로 입을 씻으며 정원의 풍경을 바라본다. 커다란 나무, 물에 의해 대나무통이 삐걱 내려가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다음 방문객을 위해 차 그릇을 닦는 소리.
창틀이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 시리도록 차가운 초록, 서로 뒤엉켜 끊임없이 이어지는 형체들 그 중간중간 존재감을 드러내는 돌과 돌상들. 아빠가 선물해 준 커다란 카메라를 들어 나만의 시선으로 신중하게 셔터를 누른다. 이곳에 있는 내가 어떤 감정인지 미래의 내가 이 사진들을 꺼내볼 때 다시금 그 감정을 느끼길 바라며. 한 몸 같던 카메라를 잠시 내려두고 풍경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 보면 그것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오로지 내 감각에만 집중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날 둘러싼 환경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걸 그림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한 대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많은 감정들을 깨닫는 게 좋았다. 하지만 처음 발 디딘 서울은 나에게 그러지 말라 말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니. 넌 너무 예민해서 버겁다. 산이 안 보이고 빌딩만 보여서 답답하다고? 그게 그거 아냐? 네가 뭔가를 깊이 고민하고 작업하는 건 너의 강점이지만 세상은 그걸 기다릴 수 없어, 대충 해. 창의적인 거 없니?
강남 한복판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은 공허했고 모두가 다급했다. 대학시절, 자신만의 꿈을 펼치던 친구들의 눈과는 너무나 달랐다. 입시 시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친구들의 보폭과는 달랐다.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많은 건물과 그것을 위해 썰려나가는 산들을 보며 이렇게 많은 자연이 사라지는데 내가 있을 곳은 없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알 같았다. 생명이 들어있어야 할 그 자리는 공허했다. 외로움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누군가 손끝으로 툭 치면 모든 게 바스러질 것 같은 것들이 분주하게 길을 내는 걸 보며 불안감이 들었다. 내 가족을 위해 일해라고 말하며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이게 내 자식을 위한 거야라고 말하는 윗분들을 보며 배신감을 느꼈다. 나에게 그런 생각 왜 하니 너 예민하다고 말했다. 너 여기서 적응 못하면 네가 잘못된 거야라고 말했다. 알겠다고 답했다. 내가 변해야 했다.
기척이 느껴진다. 나 말고도 누군가 이 신사를 방문했구나.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 일본어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 다시 내 눈에 커다란 자연이 담긴다. 이곳, 이 순간에선 내가 잘 못된 게 아니구나. 바람이 불어온다. 나무 이파리가 햇빛에 반짝인다. 밝아졌다 어두워진다. 어두웠다가 밝아진다. 나는 지금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낀다. 멍하게 바라본다. 예쁘다. 오랜만에 내 마음속에 수채화가 가득 퍼지는 걸 느낀다. 기쁘다.
자그마한 서울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지낸 지도 일 년이 넘었구나. 5일간의 여행치 고는 꽤나 가벼운 캐리어를 풀며 일본에서 사 온 과자를 와작와작 먹는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볼까. 끝을 바라던 내 머리의 화살표가 오랜만에 방향을 틀었음을 느낀다. 다음 여행을 상상하며, 나는 아직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