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석 하늘] written by 이탈로 칼비노_민음사
“당신들은 거기 껍질에, 밖에 살고 있지요.
분화구 바닥에서 크프우프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프우프크가 지구의 표면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주글주글한 사과 껍질 위에 얼룩처럼 번져 가는 곰팡이’라 표현하며 조소를 날린다.
지구의 중심부, 핵 근처에 살고 있는 그는 우리가 그저 웃긴가 보다.
이탈로 칼비노의 [모든 우주만화]는…쉽지 않다. 친구들이 이 책을 들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표지가 너무 예쁘다, 어떤 내용이야?"라고 묻는다. "이탈로 칼비노라는 작가야. 1923년 쿠바에서 태어났지. 그가 과학 이론을 읽으며 상상한 다양한 단편들이 실려있어. 여기서 주요 화자는 크프우프크라는 이상한 존재인데, 그가 우주의 먼지로써 혹은 공룡으로써 지구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지켜보는 이야기야"라고 답한다. 그럼 다들 우와 "엄청 흥미롭다. sf소설이구나~!" 하며 책 표지를 찍어간다. 그런 그들에게 덧붙인다. 이렇게 들으니까 재미있을 것 같지? 나 원망하지 마.
그의 작품 세계를 접하기 전의 그들의 순수한 눈동자를 보는 건 즐겁다. 역경이 찾아오리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나처럼.
각 단편들은 모두 20페이지 내외의 분량이다. 긴 분량을 아니라 금방 읽어갈 수 있다. 다만 나는 이 짧은 단편 하나를 이해하기까지 ,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했다. 그래야 내 방식대로 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 처음 읽고 나서는 도대체 뭔 내용이야, 도대체 주인공의 시점이 뭔지를 모르겠네 하고, 두 번째 읽고 나서는 작품의 설정을 이해하게 된다(아 주인공은 지구가 점점 커져가는 과정에서 떨어지는 운석들을 정리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세 번째 완독 후 숨겨진 이야기를 파악하게 된다 (아 작가는 이 설정을 통해 떠나간 연인들을 회상하고 있구나).
여러 사이트에 검색해 보아도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이 책을 해석한 방향과 느낌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이런 오묘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책의 진가가 올라오는 법이니까.
처음으로 꺼내볼 단편은 [암석하늘]이다. 이 글의 첫 문단에 적었던 글이 이 책의 내용이다.
주인공 크프우프크(kfwfk)는 지구의 핵, 중심부 근처에서 르딕스라는 여성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돌로 된 하늘이, 크롬과 마그네슘으로 이뤄진 구름이, 납 소나기가 내린다. 크프우프크는 지구 생명체의 시조로써, 지구 중심부부터 '살아 있는 지구'를 만들고 이를 확장시키기 위해 르딕스와 함께 중심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화산이 분출하며 르딕스는 지구 표면으로 튕겨 나간다. 그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용암을 이용해 밖으로 나오게 된다.
문틀에는 그리스어로 오르페우스라고 적힌 문을 넘자 르딕스가 보인다. 그녀는 외부의 소리가 차단된 공간에 있었다. 그 순간 주변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들(자동차 소리, 주크박스 소리, 대량 학살의 희생자를 실어 나르는 사이렌 소리 등)이 그를 방해하고 납치범에 의해 그녀를 다시 눈앞에서 잃는다. 크프우프크는 우리에게 말한다. 외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혹시라도 우리를 둘러싼 소리 안에서 르딕스의 노래를 듣게 된다면 자신에게 말해달라고, 다시 그녀와 지구 한가운데 삶을 꾸리고 싶다고.
여기까지가 스토리 간단 요약이다. 어떻게 와닿는가? 이제 차곡차곡 내가 느낀 감정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글에서 ‘소리, 지진파‘가 왜 큰 비중을 차지할까?
각 이야기마다 주석으로 칼비노에게 영감이 되었던 과학 이론을 짧게 요약해 놓았다.
‘지구 내부에서 지진파가 확산되는 속도는 지각과 맨틀, 핵을 구성하는 물질 사이의 불연속성과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이 주석을 통해 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리', '진동'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보자.
지진파는 지구 내부에서 울려오는 소리다. 지진파는 각 층위를 구성하는 물질과 깊이에 변형되고 단절되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등장하는 지진파를 ‘진실한 목소리’로 치환하고자 한다. 깊은 곳에서 시작되지만, 올라오며 뒤틀리는 것.
이렇게 하면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이야기들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형될 수 있다', '진실된 이야기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라는 필터로 인해 걸러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크프우프크는 왜 지구의 중심으로 가길 바랐고 왜 지구 표면에 사는 우리를 경멸할까?
글 안에서 크프우프크는 지구의 본질을 목표로 하는 자신과 달리, 우리가 ‘표면만 핥고 사는 존재‘라며 조소를 날린다. 그는 왜 우리를 그리도 싫어할까.
여기서 나는 '지구의 중심부'라는 키워드를 '존재에 대한 철학'으로 치환하고자 한다. 이렇게 설정하면, '그가 중심을 향하는 건 진실을 향한 추락, 본질에 대한 몰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아래처럼 정리해 보자.
크프우프크= 지구의 중심을 향하는 존재> 가장 진실을 욕망하는 자
르딕스= 지구 중심부를 향하던 중 표면으로 납치됨> 소리만 남은 존재> 크프우프크가 되찾고자 하는 존재
크프우프크가 르딕스를 찾고자 했던 건 그녀가 진원에서 오는 목소리였기 때문은 아닐까? 진리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 진리와 함께 세상의 본질(핵)에 다가가고자 했지만 진실을 탐구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그 진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왜 르딕스는 납치당했을까? 오르페우스는 갑자기 왜 등장하지?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이다. 내 또래라면 만화책을 통해 은발에 리라를 들고 있는 잘생긴 그를 연상할 수 있으리라.
그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심금을 울리는 리라 연주로 하데스는 그가 아내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는 걸 허락하지만 조건을 건다. 절대로 지상에 완전히 도착하기 전에 따라오는 아내를 뒤돌아보지 말 것. 지상에 다다르기 직전, 그는 불안감에 그만 뒤를 돌아보는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끌어낼 수 있는 키워드는 ‘영원한 상실, 소리, 하강’이다.
르딕스는 오르페우스가 적힌 문틀을 너머 소리가 차단된 공간에 있었다. 표면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녀를 납치해 밀폐된 공간에 가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두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첫 번째, 진리를 변질시키고 싶지 않은 욕심
기껏 손에 잡은 진리를 그대로 보존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것이 너무나도 두려워 외면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그녀를 감금한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욕망이 자유롭게 진동하고 싶던 르딕스를 막아버린 건지도 모른다.
두 번째, 보호의 욕망이 부른 상실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지키고 싶은 욕망에 뒤돌아봤고. 그 욕망이 경국 영원한 상실을 불렀다. 크프우프크 역시 그녀를 되찾기 위해 표면으로 올라왔지만 또다시 눈앞에서 그녀를 잃는다. 마치 영원히 잡히지 않는 진실처럼. 영원히 추구해야 하는 무언가처럼.
이렇게 나만의 해석의 방향을 설립했다. 이 설정들을 반영하여 다시 글을 읽었을 때 내가 느낀 메시지 이렇다. ‘진리를 탐구하는 척만 하는 이들이 진정한 진실에 다다를 수 있는가. 다다르더라도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가’였다.
현재 우리들은 많은 것을 인식하고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완벽히 파악한 이들은 몇일까?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에서 말한 것처럼, 정보는 넘치지만 이해는 부족한 시대다. 수많은 정보들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깊이 고민하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우리에게 쥐어지는 수많은 진실들을 어떻게 사용할지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는가. 우리 중 누가 진짜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내려가고 있을까?
내가 모든 우주만화를 읽으며 칼비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한 바는, 그는 과학 이론을 통해 단순히 상상력을 펼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과 철학을 담고자 했다는 거다. 과학이라는 냉정한 언어 위에 사랑, 상실, 비판 같은 인간의 서사를 숨겨 놓는 방식. 그게 칼비노의 진정한 문학적 실험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세포라던가, 고대 생물(…) 이런 개체로 설정되어서 평소 독서를 할 때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나에게 꽤나 큰 벽을 선사했다. 애니메이션을 업으로 하며 쌓아왔던 상상력의 한계마저 느꼈다. 내가 고대 우주 모습을 어떻게 알아!! 하며 책을 덮어버린 순간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잠들기 전, 작은 독서용 조명만 켜두고 어둠 속에서 이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드디어 책이 이해되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라면 상상하지 마. 그냥 읽어. 그러자 책의 내용이 이해되었다. 초현실적인 세계관 뒤 너무나도 사실적인 사회의 모습과 인간군상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크프우프크는 내 머릿속에서 작은 세포가 되어 꾸물거리다가도 커다란 공룡이 되기도 했고 유럽 어딘가 청크 부츠를 신은 남성이 되기도 했다. 드디어 이 책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내 상상력을 완전히 차단하자 또 다른 상상력이 탄생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이탈로 칼비노라는 작가의 머릿속에 조금 더 다가간 듯한 성취감에, 기쁨에 야밤에 도파민이 터져 바닥을 뒹굴었다.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해석할지 정말 궁금하다.
나랑 같이 이야기해 주길. 그곳이 지구의 표면이든, 중심핵이든. 우주 속 문학탐험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