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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 Nov 08. 2023

연애와 우정을 저울질하던 이십 대를 지나

애초에 다 가질 방법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중학생 때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친구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함께 문자를 쓰고 그 답장을 기다렸다. 친구와 그의 남자친구가 나눈 문자 대화는 모두가 공유하는 비밀이 되었고 우리는 그 풋풋한 연애를 함께했다. 고등학생 때는 남자친구와 제법 진지한 관계 맺기를 시작하며 둘만의 세상을 공유했고, 제법 은밀해진 관계는 일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동시에 선생님의 꾸지람의 대상이 됐다. 

대학생이 되어 만난 남자친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은 이후의 첫사랑이었다. 서로의 시간을 온전히 서로에게 쏟아부을 수 있게 된 어린 연인은 삶을 이루는 요소들의 경중을 따지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나는 우정과 사랑의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워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인이 전부이던 시절

커플마다 다르지만, 갓 스무 살을 넘긴 과거의 나와 전남자친구는 일상을 거의 함께했다.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밥을 먹고, 좁은 자취방에서 함께 잠들고 다시 수업을 들으러 함께 나섰다. 더러는 이런 와중에도 대학생활을 똑 부러지게 해내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나의 경우에 연애에 골몰하느라 많은 것을 놓쳐야 했다. 이를테면 친구들과의 관계. 

연애하느라 말아먹은 성적이나, 집에 제 때 들어가지 않아 가족에게 끼친 우려 등 부수적인 것들은 노력을 들이면 회복이 가능하므로 이제는 의미를 잃은 것들이다. 그러나 한번 떠나간 우정은 (당연하게도) 쉽게 돌아올 리 없었다. 그리고 스무 살을 갓 넘긴 내게 친구를 잃는다는 건 상당히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게다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유난을 떨며 연애하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기에, 실로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만의 비밀연애

철없던 시절 호되게 데인 이후로 연애할 때의 나에게는 부끄러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연애할 때 주변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품고 연애를 하면, 아이러니하게, 아주 연애를 새삼스러워하는 어리숙한 사람의 행동을 하게 된다. 

이성교제 자체를 통제받던 학창 시절 그랬듯, 제삼자에게 남자친구와의 일화를 얘기해야 할 때면 애매하게 주어나 목적어를 흐려 그 주체가 애인인지 친구인지 가족인지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SNS에 남자친구의 사진을 올린다거나,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을 전시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숨길 일도 아니지만 어쩐지 부끄러웠고, 연애하며 유난 떤다는 인상을 줄까 봐 두려웠다. 친구들에게 연애상담을 하는 일 또한 거의 없어졌다.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 혹은 친한 직장동료들은 나를 안지 몇 개월이 지나도 남자친구의 유무를 모르고 있다가, 어떠한 경로로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유난히 남자친구 얘기를 안 하는 편인 것 같다'라고들 말한다. 

이런 이상한 행동의 기저에는 미움받기 싫은 감정이 있다. 내가 남자친구가 없었으며, 앞으로 없을 것만 같을 때 나를 좋아해 주던 사람들에게서 꾸준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겠지. 그러나 동시에 나는, 진정으로 타인의 연애사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늘 품고 있는 사람으로서, 둘만의 관계는 둘 사이에서 꾸리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뼈아픈 경험이 내게 준 교훈이었고, 같은 이유로 가까운 친구의 연애사도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짝꿍이 1순위가 되는 나이

시행착오 끝에 나는 서른을 앞두고 있다. 친구 중 20퍼센트 정도는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생각하는 연애를 하고 있다. (바닥 치는 출생률이 증명해 주듯 나머지 80프로 정도는 결혼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연애를 할 사람/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을 사람으로 지인들의 노선이 명확히 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 (당연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이제는 애인을 1순위로 여기며 여가를 보내는 것이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삼십 대를 앞둔 우리 중 일부는, 우리가 맞닥뜨린 삶의 과제가 결혼과 정착이라고 여겨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 그랬듯 가족, 친구, 남자친구 모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모두와 잘 지내고 싶다. 누구 하나 서운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 시간도 지키고 싶다. 지난 노력의 결과를 보면 그런 이상적인 관계 속의 사랑받는 나 같은 건 사실 없다는 걸 알지만, 어느 한 곳에 치중하며 사랑하는 것 중 일부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반드시 무엇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도 한시적 베스트프렌드인 애인을 포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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