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ce Apr 19. 2024

매일 보는 회사 사람들과의 스몰토크란

친구보다 멀지만 가까운

지금 다니는 회사 동료들과는 마음이 잘 맞는 편이다. 우리는 모두 서른에 가까운 또래인데, 노력하지 않아도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가족이나 친구에겐 망설이다 결국 접었을 이야기를 보다 쉽게 꺼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 가장 비참했던 순간의 비밀을 쉽게도 공유하면서, 인스타그램 계정은 공유하지 않는 적당한 친밀함을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의 대화가 피곤한 순간은 반드시 있다. 모든 대화가 평화롭고 유쾌하기엔 우리는 직장에서 부대껴가며 일하는 사이이며, 하루 중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 제아무리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일지라도, 직장생활을 하며 늘 호수같이 잔잔한 성품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순간 예민해지고 어느 순간엔 할 말이 동난다. 


우리가 주로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이런 것들이다. 요즘의 취미, 요즘 읽는 책, 새로 찾은 LP 바, 주말에 다녀온 꽃 축제, 새로 배우기 시작한 악기.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 서로의 취향이 새롭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지루한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도 우리를 이어주는 다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들이기로 암묵적 합의를 한 셈이다. 동료 A가 최근에 빠졌다는 그 연예인에 한 톨의 관심도 가지 않으면서도 '오, 되게 멋있다. 한번 찾아봐야겠다.' 한다. 동료 B가 최근에 호감을 가진 남자와의 일화를 공유하면, 사실은 그것이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라도 '무슨 옷 입고 나가실 거예요? 저희도 가서 구경하면 안 돼요?' 하는 농담을 곁들인다. 


그러다 보면 수다를 떨 때 들뜨고 즐겁다가도,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오면 비로소 긴장이 풀려 편안해지는 아이러니한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들어가기 싫다, 이렇게 놀다가 퇴근하고 싶다' 하면서도, 사무실의 내 책상에 혼자 앉으면 편안해지는 것은 내가 내향적인 인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인투식스를 일터에서 보내고, 퇴근 후에는 가끔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을 만나거나 데이트를 하는 루틴이 자리 잡은 지 1년 반이 되어간다. 학생땐 밥 먹듯 만났던 친구들과 취업 이후에도 꾸준한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쓰러질듯한 피곤함을 이기거나 주말 스케줄을 조정하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일 년 만에 뵌 친척 어른 대하듯 일, 건강, 연애사 같은 하나마나한 질문이나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명절에 뵙는 어른들이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것 외에는 할 말도 궁금한 것도 없어서 그런 것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동료는 친구만큼은 가까워질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씁쓸하지만 그 반대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붙어살던 친구들과는 일정 간격 멀어지고, 서른 가까이 만날 일도 없던 사람들과 하루를 함께하게 된다. 


그러나 이 변화는 내게는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이다. 지금의 동료들은 대체로 차분하고, 사려 깊고, 문화생활을 즐기며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이다. 이 부분은 내가 당장 이직 생각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명 나는 그들과의 무탈한 대화를 위해 꽤나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적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가 가끔 내뱉는 무의미한 헛소리에도 그들은 다정하고 재치 있게 응해주고 있음을 매 순간 느끼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 없는 요즘 신입사원에 대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