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평생 글쓰기는 내게 여러 의미가 되어왔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소위 말해 글쓰기로 금상을 쓸어오는 아이였다. 운문이든 산문이든 주제에 맞춰 생각을 적어냈을 뿐인데 학교에선 늘 상을 줬다. 그땐 '나 글을 영 못쓰진 않는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에 그쳤다.
입시철이 되어 대학 갈 방법을 정해야 했다. 나는 공부 잘하는 학교의 성적 애매한 학생이었고, 수능만으로는 명문대에 입학하기 어려웠으니 논술 전형을 노릴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담임선생님은 내가 논술전형 응시를 위한 수능 최저등급을 맞출 리 없다는 판단하에 '수학 공부를 더 해라'하셨다. (그는 수학교사였으니 이제는 그를 이해해 본다.) 결국 입시 논술 작문 연습을 단 한 번도 못한 채 수능을 쳤다. 놀랍지도 않게 나는 지망한 모든 대학의 최저등급을 맞췄고, 응시한 모든 논술고사에서 예비 1, 2번으로 떨어지는 고배를 맛봤다. 몇 번만 써봤어도.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오는지만 알았어도.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교에 진학할 수야 있었지만 한동안 글쓰기는 내게 탈락의 초라함과 민망함을 끌어냈다.
성인이 되어서는 너무 기쁠 때나 너무 괴로울 때 짧은 글에 감정을 뱉은 뒤 치워버리는 식의 글쓰기를 했다. 이를테면 대상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현실을 그르치고 말 거라는 불안감이 덮칠 때 뭉친 감정을 글에 털어내는 식이었다. 네이버 메모장, 워드, 노션을 이용해 어떤 글이든 썼고 다시는 열어보지 않았다. 작가인 나조차 다시 읽지 않았으니 당연히 남에게도 열람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 좀 잘 쓰는지도~어 근데 논술은 탈락했지~글쓰기야 감쓰지 뭐~‘ 하는 감각들이 뭉치니 어쩐지 글을 쓴다는 사실이 민망스러웠다.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이 글이다 보니 누구나 내 글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사랑은 그 온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절대 주체적으로 쓰지는 않는 삶을 살던 중, 친구의 제안으로 와사비라이팅클럽 3기에 참여하게 됐다.
와라클은 쓰고 싶을 때 쓰던 습관에는 반하는 규칙을 가진다. 나는 1주에 1개 글을 마감해야 했고, 이것은 모두가 볼 수 있는 게시판에 게재한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다는 형식 또한 두렵지만 매력적인 요소였다. 내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지 수용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의도한 바대로 읽힐지 혹은 어쩐지 엉성한 건축물처럼 보일지는 내보이기 전에는 모른다.
월요일에는 피드백 조 구성을 확인하고, 목요일에는 서둘러 조원들의 글에 피드백을 보내고. 랜선 작업실이 열리면 열심히 참여해서 또 글을 쓰다가 일요일이 되면 마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4개의 글을 완성한 채였다.
그런데 이보다도 큰 수확은 글을 쓰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된 점이다. 글을 쓰다 보면 겪게 되는 혼란, 포기, 비판, 수용과 같은 단계들을 함께 넘어온 동기가 생긴 점도 기뻤다.
와라클은 3기를 끝으로 잠시 정비 기간을 갖는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꾸준한 글쓰기 습관을 유지할지는 고민이 된다. 위에 나열한 것 외에도 글을 꾸준히 쓰며 얻은 게 많아, 어떤 방법으로든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게재해 볼 예정이다. 일단 시작하면 결과물이 나와 있을 것. 글감은 어디에나 있고 시련조차 글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