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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 Jul 21. 2024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친구

나는 길고양이와 연이 깊은 편이다. 지금껏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냈는데, 적막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나의 퇴근길 친구는 동네의 길고양이들이었다. 꾸준한 눈인사 덕에 얼굴을 익힌 길고양이들은 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당당히 간식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양이마다 성격은 천차만별이었으나, 공통적으로 어둡고 조용한 곳에 머문다는 특성이 있었다. 산책하는 강아지보다 골목의 길고양이를 만나는 순간을 더 사랑했던 이유 또한 거기에 있었다. 혼자 걸을 때, 적막 속에서 지친 발걸음으로 귀가할 때, 하루동안 망가진 마음을 질질 끌어다가 집으로 되가져갈 때. 길고양이와는 보통 그런 때에 마주친다. 


연고 없는 지역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당시 회사의 나이 지긋한 관리자급 직원들은 나를 '야', '너'라 부르며 하대했다. 팀장은 아침에는 웃다가도 오후에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었다. 여러 모로 한계를 느끼고 숨을 몰아쉬기 위해 나간 테라스에서 발견한 건, 손바닥보다 약간 큰 아기 고양이였다. 나는 척박한 회사 건물의 한 구석에서 별안간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 만남은 느린 영상으로 남아 질리도록 꺼내보는 추억이 됐다. 


첫 조우의 저녁, 고양이를 위한 물그릇을 하나 마련했다. 따뜻한 물을 담아 둔 다음날 아침에 보니 아기고양이 두 마리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순간, 이 작은 생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불이 붙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급하게 새벽배송으로 주문한 어린 고양이용 사료를 물에 개어 올려두었다. 그러자 못 본 척하는 사이 밥과 물이 빠르게 사라졌다. 사내 육묘 활동이 몇 달에 걸쳐 이어지는 사이, 솜털 같던 아기 고양이들은 진짜 고양이의 형태를 갖춰갔다. 


어떤 날엔 날씨가 아름다워 마음이 벅차고, 다른 날엔 코 끝을 스치는 공기부터 역하다. 세상은 늘 묵직하게 제자리를 지키지만 내 마음의 넓이에 따라 아름답거나 추하다. 근심이 없는 상태의 나는 만물을 아름답게 보는 편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하천도 사진으로 남긴다. 그러나 마음에 한 톨의 걱정이라도 심긴 날에는 대상의 더러운 구석만 집요하게 관찰하게 된다. 비가 와 범람하기 직전의 하천이 어찌나 더럽고, 또 물살이 거센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오래 남는 아름다움은, 깊은 고통의 끝에 찾아든 작은 행운에 가깝다. 행복에 들떠 만물이 아름다울 때가 아니라, 세상이 흑백일 때 발길에 치이는 얕고 가벼운 아름다움. 마음에 일던 오랜 가뭄을 해소해 주는 예기치 못한 소나기. 고통이란 말 그대로 정말 고통스럽지만, 사소함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도록 초연함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나에게 의미가 있다. 

아기 고양이가 어린이 고양이가 되도록 돌보는 동안에도 거친 회사생활은 계속됐다. 내 마음 또한 꾸준히 깨지고 상처 입기를 반복했다. 테라스의 아기 고양이는 내 마음이 가장 물러져 있을 때 만난 선물이었다. 깨진 마음의 균열을 비집고 들어온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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