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하는 자아
희망 편
오늘 기분 어때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네. 고생이 많으십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네 선생님도요.
절망 편
어디 사세요? 몇 살이세요? 남자친구는 있어요?
MBTI는 뭐예요? 부모님은 지방에 사시고? 예쁜 딸 올려 보내고 걱정 많으시겠네.
대학원 다녀? 등록금은 어디서 나와요? 부유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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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안위가 궁금해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짧은 난항을 겪었다. 다행히 첫 직장의 선임 직원들은 너그럽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라 배울 점이 많았다. 그들의 사소한 특징을 따라 하다 보니, 이제는 '식사는 하셨어요?', '주말 잘 보내셨어요?'와 같은 시시한 인사말을 제법 뻔뻔하게 건넬 정도는 되었다.
내가 스몰토크에 흥미가 없는, 사실 조금은 깔보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되지 않은 대화라고 생각해서다. 말이란 개인이 가진 응축된 가치관을 신중하게 드러내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화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기반으로 흥미로운 사실을 주고받는 과정이어야 한다. 상대의 가치관에 공감하고 때로는 논리적 결함을 채워가며 이루는 상호작용.
그런 효과가 보장되지 않고서야 굳이 타인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궁금하지 않은 일을 묻고, 진실되지 않은 대답을 내놓는 에너지 낭비.
스몰토크 세계관에의 기본값은 이상적인 삶이다. 부모님이 건강히 계시고, 그들은 나를 사랑하시며, 서른 즈음인 나에게는 정혼자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 등. 이런 기본 세팅값에서 하나씩 깎아나가는 식이다. 어느 면에는 솔직함을 더해도 좋고, 이 부분에서만큼은 절대로 결핍을 드러내지 않아야겠다는 식의 계산이 선다. 간단한 편집을 거치면 예쁜 면만 골라 자아를 조합할 수 있다.
가끔은 상대의 질문을 정정하지 않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대화 후 거대한 공허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저는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는 귀한 집 딸이랍니다.' 하며 넘기는 방법이 있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에 흠집을 내면서 사실을 고하는 방법이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자의 방법을 익숙하게 취하게 되었지만 그런 대화가 지나가면 여지없이 슬퍼진다. 스스로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기만하는 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했다는 자괴감도 남는다.
오늘도 내게는 여러 질문이 닥쳐올 예정이다. 사적인 영역에 관한 질문은 대체로 애정과 무례함의 경계에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조금은 이해하니까, 그들도 좋아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니까, 나도 가끔 주제를 꺼내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삶이란 원래가 모순덩어리이자 무작위의 굴이니까. 사실 나는 토요일에 울다 잠들었지만 한국시리즈를 관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도 사실이고, 가족과의 따뜻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를 다시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