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어 교육에 대한 단상1
현 고등학교 교과서 수록 작품 중에는 <엇박자 D>라는 현대소설이 있다.
공연 기획자이자 작중 서술자인 '나'는, 고등학교 때 박치였던 동창이자 주인공인 엇박자 D를 만나게 된다. 현재 무성영화 감독이 된 그는 유명 밴드인 '더블더빙'의 공연기획을 맡게 되어 나에게 보조 기획자리를 제안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공연 준비가 되어갈 무렵 엇박자 D는 고교 동창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나에게 전하고 나는 콘서트날 어렵사리 동창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공연의 클라이맥스에서 엇박자 D는 20년전 실패했던 합창곡을 리믹스하여, 22명의 목소리로 음과 박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화음을 이뤄내어 조화롭게 들리도록 기획된 노래를 들려준다. 동창들은 전원 눈물의 기립박수를 친다... 는 뭐 그런 평범한 내용의 소설이다.
소설자체가 재미없고 분석할 요소가 별로 없는 것 까지는 그렇다쳐도 더 문제인 것은 이 소설이 전하려는 주제의식이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교사용 교과서에 공식적으로 적혀있는 이 소설의 주제는 '다름과 차이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필요성' 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이 소설의 주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때면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근데 엇박자 D는 다른게 아니라 그냥 트롤러인데요?'라거나 '하지만 엇박자 D도 남들 존중 안 한 것 아닌가요?'라고 나에게 이의제기를 해온다. 모두 실제로 했던 발언을 기억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나는 그런 질문들에 교과서가 권장하는 대로 반박할 근거를 작품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다시 합창을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엇박자 D의 목소리만 들리면 아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음은 뒤죽박죽이 됐으며 박자는 제멋대로 변했다. 그의 목소리는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였다. 음악 선생은 엇박자 D에게 자진 사퇴를 권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축제 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광고를 여러 곳에 해 두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좋아, 대신 넌 절대 소리 내지 마. 그냥 입만 벙긋벙긋하는 거야. 알았지?”
중략 부분 줄거리 : 축제 무대에서 ‘엇박자 D’는 음악 선생님의 지시를 무시하고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고,합창단의 노래는 엉망이 된다. 화가 난 음악 선생님은 공연을 멈추고 ‘엇박자 D’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교과서 수록된 해당 장면을 그대로 발췌해온 내용이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더 음악 선생님이 엇박자 D의 개성을 존중해줄 수가 있겠는가! 일개 음악선생이 혼자만 박자를 못맞추는 학생 한명에게 합창에 어울릴 수 있도록 공연을 기획하고 리믹싱을 해주길 바라는 것인가? 아니면 공연이 엉망이 되든말든 학생들도 선생들도 똘똘뭉쳐서 그래도 우리는 함께했잖아! 라고 아름다운 정신승리를 하길 바라는 걸까? 게다가 더 열받는 점은 엇박자 D는 자기가 여기저기 광고해뒀다는 이유로 자진 사퇴 권유를 무시하고 합창에 끝까지 참여하며, 자신이 노래를 부르면 합창이 엉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일부러 노래를 부름으로써 공연을 망쳐버렸다는 점이다. 다양성을 존중받고 싶으면 일단 공동체의 성공에 기여하고 협조해야하는게 올바른 순서 아닌가?
작품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주제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야한다. 이광수의 <무정>이 실패한 계몽소설인 이유는 작품 내내 '구식 여자도 좋고 신식 여자도 좋은데 어떤 여자랑 사귈까나~' 같은 고민 밖에 안하던 주인공이 마지막 장면에서 뜬금포로 '그러나 조선민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계몽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주장하는 데에 전혀 힘이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주제와 장면이 좀더 설득력이 있었으려면 다양성과 개성 자체가 무시받는 상황이 그려져야지, 팀워크를 깨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서는 당위성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국어교과서에서 엇박자 D의 행동은 개성이고 선생님의 행동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가해행위라고 가르치라 명령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불만이었던 점이다. 우리나라는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해야한다'는 문장을 암기시킨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생각하라'고 암기시킨다. 하지만 막상 '하지만 엇박자 D도 남들 존중 안 한 것 아닌가요?'와 같은 다양성있는, 개성있는, 의견을 낸다면 시험 점수는 그런 의견을 냉철히 묵살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정답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