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병렬

by Yongmoon Kim

회사에서는 논문을 쓰고, 개인 시간에도 논문과 학업계획서를 쓴다. 일상이 글쓰기의 연속이라 여기에 올릴 글을 정제할 시간 까지는 없을 것 같다. 하여 정돈된 글을 올리기는 힘들 것 같기에 그냥 스케치만 올려본다. 애초에 블로그 제목은 ’less serious ideas’ 였으니까.


23.10.15

논에 바람이 스친다.

벼들이 누웠다 일어나면서 바람의 모양을 알려준다.

“역시나 관계가 없다면 나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게 아닐까”하는 반복되는 뻔한 생각을 한다.


벼들의 움직임에만 집중해본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사진 구도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보니 세상이 선들로 보인다.

새롭다.


그러나 내가 이걸 촬영해서 전시한들 사람들이 똑같이 느낄까? 그렇지 않다. 맥락이 없으므로 그냥 벼가 흔들리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맥락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세상에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넘쳐날텐데 이게 의미 있는 생각일까? 물론 미술이란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표현이지만서도.

그러나 그 말 뒤에 숨어서 우리의 생각은 파편화되고 끊임없이 돌고 돌 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발전은 없다. 대화는 없다. 모두가 자기 독백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예술가의 독창성은 고독에서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내가 어디쯤 위치하는지 모른채로 침잠만 한다면. 그리고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 아일랜드에서 당첨 번호를 연구하던 인물이 생각난다. 뭐랄까 고민 끝에 ‘1+1 = 2’ 라는 것을 발견한다면 스스로는 뿌듯하겠지만 세상에 별 의미는 없는 일이라는 것. 두서가 없지만 요는 세상과 대화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


사실 이런 생각을 예술가에게 들이미는 것은 가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고민 끝에 ‘1+1 = 2’를 찾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누가 그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산중수련을 하고 무언가 깨달았다며 내려오는 사람에게는 엄중히 들이대야 한다. “당신이 내린 답을 우리가 모르는 줄 아시오?”

작가의 이전글구상과 추상-연구-애니메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