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아래, 잠든 고양이

by 브라이트

어제 우리 집 고양이 미랑이가 죽었다.

나이가 많아서였다.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랑이는 열여섯 살이니까… 사람으로 치면 여든 살도 넘은 할머니가 된 거야.

아주 오래 산 거지.”


미랑이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엄마 곁에 있었다

원래 주인이라는 사람이 "잠깐만 맡아달라"라고 하고는 연락을 끊어버려서 엄마가 키우게 된 고양이다.

엄마는 가끔 옛날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처음엔 이모들이랑 키웠는데, 아빠랑 결혼하면서 데려왔지. 너보다 미랑이랑 먼저 가족이었어."

그래서인지 미랑이 마음속 순위는 확실했다.

1등은 엄마, 2등은 아빠.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사람' 정도?

불러도 고개는 꿈쩍도 안 하고, 눈동자만 슬쩍 굴려 내가 있는 쪽을 훔쳐볼 뿐이었다.


미랑이는 왼쪽 다리를 조금 절고, 가끔은 자기 마음과 상관없이 머리가 흔들렸지만 노는 건 무척 좋아했다.

내가 마당 정글짐 위에 올라가 낚싯대에 나뭇잎을 매달아 흔들면,

저 멀리서 미랑이가 궁둥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시동을 걸었다.

"미랑아, 잡아봐!"

내가 소리치면 미랑이는 우다다다 달려와 정확히 나뭇잎을 낚아챘다.

너무 신이 나면 고양이가 아니라 마치 뚱뚱한 토끼처럼 팡팡팡 뛰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한창 재미있게 놀 때면, 꼭 방해꾼이 나타났다.

아랫집 호윤이 형네서 밥을 먹는 길냥이, 눈치 없는 '얼룩이'였다.

얼룩이는 뭐 재미난 거 없나 늘 찾고 다니는, 심심한 건 도저히 못 참는 어린 고양이였다.

미랑이가 나뭇잎을 잡으려고 점프를 준비할 때, 어디선가 슈~욱! 하고 튀어나와 낚아채 버리는 것이다.


"야! 얼룩이 너 저리 안 가?"

내가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미랑이는 잔뜩 화가 나서 털을 부풀리며 소리쳤다.

"하아아악!"

미랑이가 무섭게 달려들면, 잽싼 얼룩이는 순식간에 자두나무 기둥을 타고 꼭대기로 도망쳤다.

그러고는 나무 위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미랑이를 내려다봤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야옹~ 못 잡겠지? 메롱~메롱."


다리가 불편해 나무를 못 타는 미랑이는 억울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결국 미랑이는 배롱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내려오기만 해 봐라.'

미랑이의 눈빛은 비장했다.

얼룩이가 내려올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버티는 고집쟁이, 그게 우리 미랑이었다.


미랑이가 떠나던 날, 엄마는 마당으로 나가 조팝나무에서 꽃이 제일 많이 핀 가지를 골라 잘랐다.

그리고 몇 걸음 옆으로 가서 잎사귀가 분홍색인 셀렉스 나무 가지도 잘라 작은 꽃다발을 만들었다.

엄마는 상자에 미랑이가 평소 덮던 담요를 깔고, 미랑이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양옆에 꽃다발을 놓아주며 엄마가 작게 속삭였다.

"미랑아, 예쁜 꽃길만 걸어서 가... 우리 아기, 고생했어."


장례식장에 가서 화장을 했다.

마지막으로 미랑이 얼굴을 볼 때, 엄마랑 아빠는 양동이에 가득 찰 만큼 엉엉 울었다.

나는... 휴지 몇 장 정도만 젖을 만큼 울었다.


화장이 끝나자 미랑이의 보들보들한 털과 살은 사라지고 뼈만 남았다.

뼈를 곱게 갈아 작은 병에 담고, 그 병을 고운 실크 천으로 감쌌다.

우리는 그 병을 마당 배롱나무 아래에 묻어주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니, 늘 있던 미랑이가 없어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마인크래프트에 들어가 블록을 하나하나 쌓았다.

잠시 후,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거 봐.”

“내가 만들었어. 미랑이랑 똑같지?”

엄마는 화면을 한참 보더니,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리고 나를 꼭 안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화면 속에는 네모난 미랑이가 서 있었다.

“정말 똑같다… 고마워, 우리 아들.”


미랑이가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면,
그때는 나를 1번으로 좋아하는 고양이를 만나고 싶다.

얼굴은 동글동글하고 넓적하고,
늙어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고양이 말고,
내가 가는 곳마다 졸졸졸 따라다니는 고양이.

그런 고양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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