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우리

by 브라이트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는 늘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다.


나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제일 좋다.

곤충을 찾고, 나뭇가지로 활을 만들고, 땅을 파서 잎을 덮어 비밀스러운 함정을 만들기도 한다.

그네를 타며 친구들과 마인크래프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교문 앞 벤치를 확인한다.

그곳엔 여전히 엄마가 있다.

엄마는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허벅지를 올렸다 내렸다 스트레칭을 하거나, 자유형 팔 돌리기를 천천히 따라 한다. 나를 기다리며 엄마도 엄마만의 시간을 즐기는 중이다.


한 시간쯤 지나 친구들이 방과 후 수업을 들으러 흩어지면 엄마는 벤치에서 일어나 말한다.

“이제 집에 가자.”

내 가방을 대신 메 준 엄마의 손을 잡고 언덕길을 내려간다.

길가 주택의 여주와 호박이 얼마나 영글었는지, 어제 봉오리였던 장미가 오늘은 얼마나 피었는지 살핀다.

“엄마, 저 호박 봤어? 진짜 뚱뚱해”

“와, 진짜 크다. 내일은 무거워서 떨어지겠네”

처마 밑 벌집은 그대로 있는지 한 번 더 올려다보고, 구멍가게 앞에 모여 있는 아이들 사이에 아는 얼굴이 있나 찾다 보면 어느새 주차장이다.


가끔은 슬쩍 시험 이야기도 꺼낸다.

“엄마, 오늘 수학 단원평가 두 개 틀렸어. 잘했지?

하나는 아는 건데 실수한 거야.”

엄마는 웃으며 대답한다.

“어. 실력 좋은데?”

엄마와 함께 걷다 보면, 아쉬움이 남는 시험 점수도 이상하게 마음 편히 고백하게 된다.


운동장에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엄마가 웬일로 보이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엔 보안관 할머니께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지금 주차장에 도착했어. 금방 갈게.”

분명히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한 번은 내가 늦은 날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 민석이랑 도서관에 갔다.

엄마에게 말하지도 않고. 그냥 “가자”는 말에 따라갔다.

그게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엄마는 운동장에도, 교실에도, 학교건물 구석구석 나를 찾으러 다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는 친구들이랑 책을 보고 있었다.

엄마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숨이 가빠 보였다.


“엄마한테 말을 했어야지.”

낮게 깔린 목소리보다 떨리는 엄마의 눈동자가 더 무서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내 가방에는 작은 위치추적기가 달렸다.


엄마가 나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나를 찾아 헤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수영장에서도 비숫하다.

강습이 끝날 때까지 엄마는 밖에서 나를 기다린다.

수업이 끝나면 엄마는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늘 하던 말을 건넨다.

“머리는 바싹 말렸어? 지퍼 끝까지 올리고. 요즘 친구들 다 감기 걸렸대.”

내 수영 가방을 든 엄마의 손을 잡고 수영장 밖을 나와 차 안에 앉으면, 기다렸다는 듯 마음의 수도꼭지가 열린다.

오늘 누가 결석했는지, 선생님이 초시계를 보며 기록을 체크하라고 한 일, 그리고 늘 선생님이 하던 ‘악어 역할’을 오늘은 내가 맡았다는 이야기까지.

“엄마, 쌍둥이 자매가 오늘 똑같은 분홍 수영복 입고 나타나서 우리 남자들은 깜짝 놀랐다니까!”

“진짜? 엄마는 엄청 귀여웠을 것 같은데... ”우리 아들 눈에는 완전 핑크 테러였겠네!

터져 나온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 물줄기가 되어 줄줄줄 이어진다.


가끔 엄마가 늦게 나타나는 날도 있다.

“미안해, 너 읽으라고 빌린 책 보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

그럴 때면 나는 “엄마, 다음엔 시간 좀 봐!”라며 살짝 으스대 보지만 사실은 괜찮다.

나도 수다 떨다 늦게 나가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으니까.


엄마도 가끔은 늦는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은 없고,

기다림 끝에는 늘 나를 향해 숨을 고르며 다가온다.

그날은 그저 엄마의 시간이 조금 길어진 날일 뿐이다.


엄마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안에서 나를 조이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린다.

하루 종일 마음속 곳곳에서 길을 못 찾아 헤매던 이야기들이 비로소 출구를 찾아 툭툭 튀어나온다.


엄마는 아무 일 아니라는 얼굴로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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