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운동에 진심이다.
그냥 건강해지자는 수준이 아니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은근히 눈에 불을 켜는, 거의 ‘라이벌’에 가깝다.
시작은 나였다.
내가 수영을 배우고 아빠와 물속에서 낄낄거리며 놀자, 늘 사진 찍기 담당이던 엄마가 슬그머니 수영장에 등록했다. 엄마의 실력이 붙기 시작하자 이번엔 아빠의 자존심이 꿈틀댔다. “어? 엄마 좀 늘었네?” 하더니, “다이어트 좀 하려고” 같은 핑계를 대며 새벽반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우리의 실력이 여물 때마다 제주도로 우리를 데려갔다. 스노클링을 하고 패들 보트를 타며 바다를 가로질렀다. 넘실대는 파란 파도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파도가 등을 툭 밀어낼 때면 꼭 “더 가봐” 하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한참을 헤엄치다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한 붉은 노을은 눈앞에 액자처럼 걸려 있었다.
“와….” 셋이 동시에 같은 감탄사를 터뜨리던 순간, 우리 사이엔 말 대신 깊은숨이 오갔다. 같은 장면을 공유하고, 나중에 언제든 “그때 기억나?” 하고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쌓인다는 건 근사한 일이었다.
그다음은 볼링이었다.
여행지에서 비를 피해 우연히 들어선 볼링장이 화근이었다. 아빠는 “손목 힘 빼고 끝까지 밀어”라며 진지하게 훈수를 뒀지만, 나와 엄마는 공을 도랑으로 정성껏 배달하기 바빴다.
그러다 엄마가 처음으로 스트라이크를 친 순간, 핀 열 개가 한꺼번에 쓰러지며 “와르르쾅!” 소리가 터졌고, 엄마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봤지? 오예!” 환호하는 엄마가 조금 창피해 “엄마, 제발 좀…” 하고 주변을 살폈지만, 속으론 묘한 질투가 올라왔다. 괜히 아빠랑만 하이파이브를 하고, 엄마 공이 빠질 때마다 엉덩이춤을 추며 놀렸다.
“진짜 치사하다!” 엄마가 입을 삐죽여도 그 티격태격함이 좋아서, 우린 밥을 먹고 다시 볼링장으로 향했다.
요즘 우리 가족의 화두는 인라인스케이트다.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 추억이라는 이 운동에 내가 발을 들인 건 엄마의 집요한 설득 덕분이었다. “이거 배우면 스케이트도 스키도 쉬워져. 분명 좋아할걸?” 처음엔 못 이기는 척 시작했지만, 바퀴 위에 올라서자 생각이 바뀌었다. 조명 켜진 밤의 경기장에서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발은 무거워져도 마음은 이상하게 한없이 가벼워졌다.
“패러렐스탑 해볼래?” 아빠의 시범을 이를 악물고 따라 하다 겨우 멈춰 서면 엄마가 박수를 쳤다. “거봐, 두 번은 힘든데 그다음부터는 달라진다니까?” 그 말에 다시 힘이 났다. 패러럴턴, 점프, 슬라럼…. 기술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먼저 뛴다. “진짜 짜릿하지 않니?” 묻는 엄마의 말에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일 때, 우리 셋은 우리만의 언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엄마는 “진짜 안 돼서 못 하겠다 싶을 때 딱 되더라”며 내 답답함을 먼저 알아챈다.
아빠는 “다시 해봐. 이번엔 될 거야”라며 내 등을 툭 친다.
등을 툭 두드리는 순간,
TV 속 운동선수들의 장면이 스친다.
서로를 끌어안고 등을 세게 두드리며 환호한다.
잘한 사람보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소리 지르는 얼굴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우리를 닮았다.
함께 몸을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내 다리가 조금씩 단단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그 무엇보다도 나를 안심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