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윽— 쓰윽—
바닥을 밀고 나갈 때마다 생기는 마찰음이
귓속에서 고요하게 번졌다.
“괜찮아. 계속 가.”
속삭이는 나만의 응원가 같았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발뒤꿈치를 눌러 바퀴를 굴리면,
바람이 뺨을 스치고
헬멧 구멍을 통과한 공기가 이마 위에 작은 길을 내며
나를 앞으로 당겨준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살며시 등을 밀어주는 듯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가슴이 벅찼다.
넘어지면,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일어서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 하는 찰나.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매끄러운 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멈춰 선 순간,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아, 된다.”
짧게 끊겼던 숨이 터져 나왔다.
후-우, 후-우.
처음 인라인을 신었을 때가 그랬다.
배우기 전엔 그저 바퀴 달린 신발이었다.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의심만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바퀴 위에 올라선 순간,
키가 훌쩍 커진 만큼 세상이 달라 보였다.
처음엔 매트 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녔지만
창피함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멈추지 않는 미끄럼틀을 타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단단한 필드로 나간 순간이었다.
“어?”
바닥은 생각보다 훨씬 비정했다.
“아이코!”
엉덩방아만 대여섯 번.
머릿속은 이미 바람을 가르며 질주 중인데
발바닥에서 시작된 미끄러짐은
“어, 어!” 하는 비명과 함께
허벅지와 허리를 단숨에 훑고 지나갔다.
오른쪽 다리는 분명 내 것인데
왼쪽 다리는 남의 다리 같았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민석이가 엄마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윤이 이모! 오늘 제가 얘보다 훨씬 잘 탔어요.
얘는 두 번이나 엉덩방아 찧었는데
전 한 번도 안 넘어졌거든요!”
조금 전까지 선생님이 “무릎 더 굽혀!” 하며 등을 두드리던 민석이였는데,
결과 하나만 들고 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목 끝까지 차오른 억울함이
나도 모르게 소리로 튀어나왔다.
“아니거든!”
속상함은 잠깐이었다.
그래도 인라인은 재미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어른들은 늘 비슷한 말을 한다.
“조금만 더 배우면 대회 나가도 되겠다.”
“이제 피트니스는 그만해도 되겠네.
레이싱 팀 들어가도 되겠네?”
“상 한번 받아보면 자신감 확 붙지.”
잘한다 = 대회 나간다 = 상을 받는다.
이 공식이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빨리, 더 잘 달리고 싶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른들이 권하는 ‘대회’는 나를 숨 막히게 만들 뿐이었다.
경기장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나는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대나 실망 때문에
내 즐거움이 작아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그 다정한 응원이 내 등을 누르는 돌덩이가 되었다.
“그럼 대회 나가지 마.”
엄마의 말이 방바닥에 쿵, 떨어졌다.
“엄마,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제발 그렇게 말하지 좀 마.”
“힘들다며.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야.
뭐가 문제니?”
엄마의 말은 짧고 단단했다.
“그게 아냐! 포기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고!”
나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힘들다고 한 건 그만두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 그냥…
엄마가 내가 얼마나 애쓰는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애쓰는 거 아니까 그만하라는 거지.
괴로워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괴로운 게 아니야.
어려운 거야. 어려운 거랑 싫은 건 다르잖아!
왜 엄마가 해라, 말아라 먼저 정해버려?
내 마음이 어떤지, 먼저 물어봐 줘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터졌다.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전보다 조금 덜 단단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나에게 쏟아지는 우렁찬 박수 소리를 들어본 적 있다.
수많은 관중이 모인 경기장이 아니었다.
쓰윽— 쓰윽—
오직 바닥을 훑는 마찰음만 남는 고요한 세계.
관중은 없어도
내 깊은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뜨거운 환호성.
쿵쾅, 쿵쾅.
세상 그 어떤 메달보다 선명하게 울리는
나의 심장 소리.
나는 이 소리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