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 때면, 게임의 재미가 두 배가 된다.
“아빠, 수면 위에 집을 지을까?”
“아니면 바닥에 집을 짓고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건 어때?”
“오, 그거 괜찮네! 나 유리 되게 많아.”
벽 색 하나를 두고도 의견이 오간다.
“벽 핑크색이 좀 얼룩덜룩한데?”
아빠는 웃으며 대답한다. “어, 벚나무라서 그래.”
“그럼 내가 색 맞출게.”
서로 한 마디씩 보태다 보면, 어느새 허허벌판 위에 우리만의 집이 완성된다.
가끔 실수로 죽어서 아이템을 몽땅 날리며 허탈하게 웃을 때도 있지만, 아이디어가 풍부한 아빠와 게임 지식이 많은 나는 진짜 ‘환상의 콤비’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빠와 게임을 즐기는 시간이 이렇게 평화롭던 건 아니었다.
예전의 엄마는 게임 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시간 다 됐어. 끄세요.”
“어, 거의 끝나가요. 이것만 저장하고요!”라는 간절한 외침은 엄마에게 통하지 않았다.
“시간 되면 바로 끄기로 약속했지? 당장 종료해.”
엄마의 압박이 시작되면 내 마음은 미로 속에 갇힌 것처럼 복잡했다.
사람의 마음은 컴퓨터처럼 버튼 하나로 바로 꺼지지 않는다.
짜릿했던 기쁨을 천천히 가라앉히고, 공들여 쌓아 올린 성취의 여운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즐거워야 할 게임의 끝에는 늘 투덜거림과 서운함, 싸늘한 공기만이 남았다.
어느 날, 땀 흘려 가꾼 드넓은 해초 숲을 보여 주며 “엄마, 나 오늘 엄청난 해초 숲을 키웠어!” 하고 뿌듯하게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엄마는 화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래, 이제 끝났으면 수학 문제집 풀어.”
그 순간 깨달았다. 엄마는 내게 게임할 ‘시간’은 허락했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 내가 블록 하나하나에 쏟아부은 ‘마음’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엄마에게 게임은 다음 공부를 위한 보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게임은, 시간을 들여 쌓아 올린 또 하나의 세계였다.
이런 차가운 분위기에 온기를 불어넣은 건 아빠였다.
아빠가 내 옆에서 함께 게임을 하며 내가 만든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하자, 엄마의 시선도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가끔은 장난기가 발동해 엄청난 작전을 세우기도 한다.
"아빠, 나 재밌는 거 한다? 펑!”
“너, 뭘 터뜨린 거야?”
“엔드 수정! 엄청난 폭발을 일으켜 보려고. 아빠, 저기 엔드 수정 한번 쏴봐.”
아빠가 멀찍이 서서 활시위를 당기자, 수정이 터지며 지면이 완벽하게 네모난 구멍으로 파였다.
“우와, 엄청나네!”
“그치? 엔드 수정은 진짜 세다니까!”
그 광경을 보며 우리는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리가 투닥거리며 웃어대는 소리가 집안을 채우자, 어느새 엄마의 시선도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둘이 아주 신났네. 그게 그렇게 재밌어?”
짐짓 무심한 척 물으셨지만, 엄마의 입가에도 살짝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방학이니까 허락하는 거야.”라고 엄하게 말씀하시면서도 게임 시간은 전보다 넉넉해졌고, 어느새 엄마는 우리가 만든 화려한 바닷속의 집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해 주기도 하셨다.
덕분에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게임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빠는, 내가 게임 속에서 장난기를 발동시키기에 딱 좋은 최고의 타겟이기도 하다.
마크 초보인 아빠는 내가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가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숨을 죽이고 접근해 ‘한 방’을 먹이면, 화면 너머로 당황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뭐야? 야! 갑자기 공격하는 게 어디 있어!”
그 순간이 왜 그렇게 즐거운지 모르겠다. 어쩌면 게임 속 승리보다 아빠를 마음껏 놀릴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짜릿한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 숨 가쁘게 쫓고 쫓기는 긴장감이 있다.
잠깐 시야에서 사라지기만 해도 걱정되고, 늘 상대의 속도를 맞추느라 바쁘다.
하지만 아빠랑은 동네 길을 산책하는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억지로 속도를 맞추느라 긴장할 필요도 없다. 그저 발걸음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함께 걷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게임 속에서는 아빠와 나의 역할이 바뀐다는 거다.
평소 현실에서는 아빠가 내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만, 게임 속에서는 내가 아빠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된다.
내가 아끼는 철퇴, 칼, 가죽 갑옷을 아빠에게 건넨다.
“아빠, 가만히 있어 봐.”
“왜 또 수상하게?”
“짜잔! 네더라이트 흉갑.”
“이게 그 제일 좋은 거라는 그거야?”
“응. 아빠 가져.”
“이거 네가 제일 아끼던 거 아니야?”
“괜찮아. 난 또 구하면 되지.”
내 소중한 장비들이지만 아빠에게 주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아빠가 사주신 마인크래프트 핸드북을 함께 읽으며 샹들리에 장식 법, 레드스톤으로 자동문 만드는 법을 알려줄 때면,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은 유튜브로 공략 영상도 찾아본다.
처음엔 “윤아, 직접 게임을 하면 되지, 왜 남이 하는 걸 멍하니 보고만 있니?” 하며 못마땅해하시던 엄마도 어느새 옆에 앉아 함께 웃는다.
예전에는 게임 시간을 재기만 하던 엄마가 이제는 묻는다.
“이건 어떻게 만든 거야?”
“이런 거 만들려면 고생깨나 했겠네.”
나 혼자서는 도저히 열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이,
아빠가 내 세상에 들어오자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내가 쌓아 올린 시간도, 노력도, 상상도 소중하다고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윤아, 할 일 얼른 끝내면 마크해도 돼!”
“한 곡만 치면 안 돼?”
“두 곡 다 치면 게임 더 오래 할 수 있어."
엄마는 씨익 웃으며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진다.
“할 일 못 끝내면, 엄마가 아빠랑 할 거야.”
그 말에 나는 번개처럼 피아노 앞으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