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bull DNA

by 브라이트


아빠는 할아버지가 운전할 때면 늘 조수석을 지켰다고 한다.

어린 아빠는 창밖의 풍경 대신, 할아버지의 툭 불거진 손마디가 기어 레버를 툭, 투둑 옮기는 절도 있는 리듬을 쫓았다. 찰나의 타이밍에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집어넣는 할아버지의 발끝 움직임은 어린 아빠에게 경이로운 마술 같았다. 지루할 틈은 없었다. 아빠는 이미 마음속으로 핸들을 감아쥐고, 엔진 소리가 커지다 기어를 바꾸는 찰나 차가 매끄럽게 쭉 나가는 그 상쾌한 타이밍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보이지 않는 드라이버였다.

대학 입학 후 아르바이트비를 꼬박꼬박 모아 샀다는 중고 마티즈는, 그 관찰의 시간들이 맺은 첫 결실이었다.


24시간 내내 달리는 '르망 24시(24 Hours of Le Mans)' 다큐멘터리를 보던 엄마가 물었다.

“당신, 레이서가 되고 싶었던 적 있어?”

아빠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어… 한 번쯤은.”

엄마는 놀란 듯 웃으며 말했다.

“와, 시속 300km로 몇 시간씩 달리는 거? 당신 그래서 그렇게 운전에 진심이었구나!”


하지만 아빠가 반한 건 시속 300km의 속도감이 아니었다.

0.1초를 다투는 정교한 팀워크, 칠흑 같은 밤을 버텨내는 집중력,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기술의 완성도.

르망은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니라 '24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호흡'의 경기였다.

아빠는 그저 빨리 달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그 미묘한 차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간 듯 보였다.


스피드를 넘어서는 재미에 대한 열정은 인라인스케이트로 이어졌다.

보통 사람들은 실력이 붙으면 속도를 내는 '레이싱'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기록을 단축하고 순위를 다투는 세계로.

하지만 아빠는 다른 길을 골랐다.

기술 그 자체를 탐구하며 온몸으로 만끽하는 과정에 더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바퀴 달린 신발로 점프하고 회전하는 '어그레시브'와 '인라인 피겨'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빙판 위 피겨 선수처럼 허공을 가르는 사람들을 보며 아빠는 막연히 꿈꿨다고 한다.

‘나도 저렇게 놀고 싶다.’


엄마는 바로 그 모습에 반했다.

바람을 가르며 묘기를 부리다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주던 ‘자유로운 선생님’의 모습.

“자, 무서워하지 말고 발을 뻗어봐.”

함께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깔깔거리며 웃던 그 시간들이 엄마에겐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기질,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본능은 한 박자 느리게 움직이던 내 안에도 흘러 들어온 것 같다.

나는 늘 새로운 일 앞에서 조금 망설이는 아이였지만, 막상 판이 깔리면 내 몸은 본능적으로 가장 짜릿한 길을 찾아냈다.


동네 친구들이 인라인을 그만둘 무렵에야 뒤늦게 시작했음에도, 나는 배운 적 없는 점프를 시도하고 양팔을 벌린 채 한쪽 다리를 들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결국 기가 막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휴, 저건 정말 속일 수 없는 DNA네!”


처음 슬로프 위에 섰을 때는 막막했다. 눈 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그런데 빨간 스키복에 파란 고글을 쓴 강사님이 밝게 인사를 건넨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가 스키에 빠져든 계기는 분명하다.

스키날이 눈 표면을 긁으며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

도움닫기 뒤 몸이 붕 떠오르는 점프의 순간,

슬로프 끝에서 눈가루를 흩뿌리며 멈춰 서는 드리프트까지

한 번은 벽에 부딪혀 정강이에 시퍼런 멍이 들었는데도, 속상해하는 엄마와 달리 내 입가엔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눈앞에 턱이 보이면 일단 뛰어오르고 싶었고, 벽이 보이면 기어코 그 위를 타고 넘어야 직성이 풀렸다. 빨리 내려가는 속도를 느끼기 보다는, 눈 위에서 마음껏 장난을 치고 싶었다. 그러다 마주한 모글 코스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내가 무언가에 재미를 붙였다 싶으면 엄마는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한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뒷바라지해서 남부럽지 않은 실력을 갖게 해주고 싶은, 엄마 나름의 뜨거운 애정 표현이다.

“내년엔 시즌권 끊어서 매일 오자. 이왕 시작한 거 7급 정도는 따야 어디 가서 스키 좀 탄다고 하지 않겠어?”

의욕 넘치는 선언에 아빠가 슬쩍 내 편을 들며 제동을 건다.

“에이, 즐기면서 해야지. 무슨 극기 훈련이야? 여기저기 새로운 슬로프도 가보고 그래야 타는 맛이 나지.”


내 마음은 아빠와 꼭 같다.

내가 스키에 빠진 건 눈 위를 미끄러지는 그 '기분'이 좋아서지, 남들에게 보여줄 '급수'가 탐나서가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쐐기를 박는다.

“잘하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질 텐데, 안 그래? 두 남자!”


그럴 때면 엄마가 내 마음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어서 잘하게 되는 거지, 잘해야만 재미있는 건 아니다.


요즘 내 시선은 온통 스노보더 '젭 파월(Zeb Powell)'의 영상에 머물러 있다.

화면 속 젭은 믿기 힘든 고난도 기술을 선보이다가도, 친구들과 눈 위를 구르며 마치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것처럼 깔깔거린다. 그건 단순한 감탄을 넘어 ‘나도 저 무리에 끼고 싶다’는 강렬한 이끌림이다.


진짜 나를 자극하는 건 정교한 동작을 마치 장난치듯 해내는 특유의 여유다.

젭은 정해진 슬로프를 얌전히 내려오는 법이 없다.

나뭇가지를 점프대로 삼고, 쓰러진 통나무 위를 미끄러진다. 그러다 눈 구덩이에 박히기라도 하면 창피해하기는커녕 눈가루를 뒤집어쓴 채 배를 잡고 구른다.

'실패하면 어때, 재밌는데!'

하나의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그 무한한 에너지가 내 가슴을 두드린다.

설원을 가득 채우는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풍경이다.


젭의 영상에서 내가 본 건 기술이 아니라 '분위기'였다.

잘하는 사람이 앞에서 끌어주고, 서툰 사람이 뒤따르며, 넘어지면 같이 웃고 성공하면 더 크게 환호하는 장면들.


내가 꿈꾸는 스키장은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눈 덮인 운동장이다.

같이 구르고, 잘하는 사람을 흉내 내보고, 컵라면 하나 사 먹고 다시 슬로프로 달려 나가는 그런 곳.

“엄마, 스키 ‘스쿨’ 말고 스키 ‘놀이터’는 없어?”

못하는 사람도 눈치 보지 않고 끼어 놀 수 있는 곳. 누가 더 빠른지가 아니라, 누가 더 신났는지를 자랑하는 곳. 그곳에서 나는 아빠와, 친구들과, 눈 위를 마음껏 웃으며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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