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침대가 생겼다.
그동안 우리 집 안방에는 침대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엄마가 혼자 쓰는 침대, 다른 하나는 나와 아빠가 나란히 누워 자는 침대였다.
아빠랑 같이 자면 좋은 점이 참 많았다.
아빠는 통통해서 꼭 껴안으면 포근했고,
코를 폭 묻으면 익숙하고 따뜻한 아빠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렇게 아빠 옆에 누워 있다 보면, 삐죽 솟았던 마음과 근심까지 조용히 잠들었다.
가끔은 이상한 날도 있었다. 침대에 누웠는데 느낌이 조금 묘했다.
“후우— 후우—.”
어디선가 숨소리 같은 게 들렸다.
귀를 기울이자, 이번엔 중얼중얼, 누군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어? 이게 뭐야… 침대가 살아 있나?”
몸으로 꾹 눌러보니, 물컹물컹. 들썩들썩 움직이기까지 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침대를 간질였다.
그러자 침대가 갑자기 꿈틀! 하더니
괴물처럼 변해 나에게 간지럼 공격을 퍼부었다.
“으하하하! 그만! 그만!”
나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뻔했다.
물론 그 ‘침대 괴물’의 정체는 바로 아빠였다.
아빠랑 같이 자서 제일 좋은 건, 잠들기 직전까지 실컷 놀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아빠를 이불 애벌레로 만들고 얼굴을 간질였다.
아빠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꽉 물었다.
하지만 볼이 파르르 떨리고,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푸흡!”
결국 웃음이 터졌다.
“그만, 그만해~! 하하하! 아이고!”
아빠가 울다 웃다 하며 겨우 항복을 선언해도, 나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방심한 틈을 타 엉덩이를 간질였다.
애벌레가 팔과 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문어 괴물로 변했다.
나는 엄마 옆으로 도망쳤다.
거대한 몸부림에 침대가 마치 배처럼 꿀렁꿀렁 흔들리고 삐그덕 소리가 났다.
바로 그때, 엄마가 귀에 대고 살짝 속삭였다.
“쉿. 윤아! 엄마가 뒤에서 잡을게.”
엄마와 나는 아빠 팔을 한쪽씩 붙잡고 겨드랑이를 집중 공격했다.
“으아아악! 항복! 항복!”
아빠는 눈을 질끈 감고,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나는 웃느라 쉬가 나올 뻔했다.
아빠를 피하랴, 공격하랴, 침대 위를 정신없이 굴러다니던 순간,
갑자기 엉덩이가 쑥 빠지며 나는 “어어어!” 하고 소리를 지르며 침대 밑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며 킥킥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혼자 자보는 건 어때? 네 방에 침대 놓아줄게.”
엄마는 내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원래 내 방을 좋아해서 별 고민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막상 혼자 자보니,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한 일이었다.
밤이 되면 침대 머리맡 전등을 켠다.
아늑한 불빛 아래서 만화책을 보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
엄마가 "이제 잘 시간이야"라며 불을 끄고 나가도 걱정 없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헤드랜턴을 켜면, 비밀의 시간이 시작된다.
혼자 있으니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도,
몰래 숨겨둔 감자칩을 흘리며 먹어도 아무도 모른다.
그건 오직 혼자 자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달콤한 특권이다.
그런데 어제는 조금 속상한 일이 있었다.
아주 기묘한 꿈을 꿨다.
어디선가 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집에 가면서 나를 데려가는 걸 깜빡한 것이다.
“어? 엄마, 아빠? 어디 있어?”
아무도 듣지 못했다.
나는 혼자 남았다.
그래서 누군가의 자동차를 몰고 집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운전이 엉망이었다. 도로에서 차가 지그재그로 흔들렸다.
“어? 어? 큰일 났다!”
신기하게도 어떤 차와도 부딪히지 않았다.
앞에서 오는 차가 우리 차를 슥— 통과하기도 했다.
“뭐야? 유령이야?”
길을 헤매다가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주차가 문제였다.
“에라 모르겠다!” 소리를 치며 차를 담벼락에 '쿵' 박았는데,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오자,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내가 마인크래프트를 하던 컴퓨터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안 돼!” 하고 소리쳤다.
눈을 뜨자마자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바로 엄마 방으로 달려갔다.
“엄마… 나 이상한 꿈 꿨어. 나 좀 안아줘”
엄마는 잠결에도 이불을 열고 나를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어떤 꿈이었는데? 왜 울어?”
나는 울음을 꾹 참으며 꿈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자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혼자서 운전해서 집까지 왔다고? 우리 윤이, 멋지고 용감한데!.”
“용감하다고?”
“그럼. 혼자서 집을 찾아왔잖아.”
엄마 품에 안기자, 꿈속에서부터 나를 쫓아온 묵직함이 '펑' 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시 잠이 솔솔 몰려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아뿔싸!
두 번이나 잠을 자는 바람에 내 소중한 TV 시청 시간이 절반이나 지나가 버렸다.
가끔 이렇게 무섭거나 속상한 순간도 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밤은 늘 즐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느긋한 밤이 더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