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 사랑받는 감각

by 브라이트

친구의 아이는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 문을 나서 복도를 걸어간다. 이번에 반이 갈라진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다. 잠깐 얼굴을 보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자기 교실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같은 반이 아니어도 쉬는 시간에 만나면 된다며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웃는다고 했다.


친구의 아이는 참 다정하고 섬세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남자아이치고는 씩씩하지 못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뛰어노는 것보다 교실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의 순수한 다정함을 떠올렸다.


하지만 친구의 남편은 달랐다.

목표지향적이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매년 달리기의 기록을 경신하는 그에게, 섬세한 아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의 남자애가 내 아들이라니.”

무심코 내뱉은 그 한마디가 친구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내 마음도 툭 하고 내려앉았다.

속상하고 답답했지만 동시에 나 역시 그런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인가 싶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것.

말로는 참 쉬운 이 명제가 부모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어딘가 결이 다름을 느낀다. 세상의 거친 풍파 앞에서도 쉽게 바스러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심지가 느껴진다.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남편의 기억 속 아빠는 늘 곁을 내어주는 분이었다.

어딜 가든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다니셨고, 무릎 위에 앉혀 책을 읽어주셨으며, 한밤중에 먹고 싶다는 간식을 사 오기 위해 기꺼이 옷을 챙겨 입으셨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 든 날에도 나무람 대신 이 점수로 어떤 길을 갈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주셨던 분.

학교에서 과한 체벌을 받고 돌아온 아들의 멍든 종아리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다음 날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내셨던 그 용기. 권위가 우선이던 시절에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사랑은 대를 이어 우리 아이에게도 흐른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환대하는지 온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아이는 아마 아빠의 등을 보며도 같은 감각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배 위에 함께 앉아 있는 아빠 곁에서, 아무 말 없이 곁을 내어주는 시간이 사랑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감정.
바로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요즘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어떻게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그 답을 아이를 마사지해 주는 시간 속에서 어렴풋이 발견한다.

내 손길에 몸을 맡긴 채 “엄마는 최고야”라며 목을 끌어안는 아이. 나는 이 시간을 숙제처럼 해치우지 않는다. 아이의 근육이 이완되고 얼굴이 편안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함께 풀어지기 때문이다. 잠든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마음의 소음도 조용히 가라앉는다.


사랑은 어쩌면 이런 사소한 틈새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수업이 끝난 뒤 학교 언덕길을 손잡고 내려올 때, 아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행복을 느끼는 그 고요한 산책길. 책에서 읽은 흥미로운 사실을 들려주려 눈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그 짧은 찰나들. 온전한 스킨십과 다정한 눈 맞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모든 순간이 곧 사랑이 아닐까.


아이를 키우며 나는 자주 잊곤 한다.

아이의 가치는 무언가를 잘 해내는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격이 씩씩하든 아니든,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아이는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눈부신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그렇게 자라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증명해야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라, 그저 존재하기에 사랑받는 아이로. 내 사랑을 온몸의 감각으로 기억하며 살아가는 아이로 말이다.

그리하여 훗날 아이가 거친 세상을 살아가다 휘청이는 순간을 만나더라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따스한 기억을 꺼내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네 등 뒤에는 언제나 네 편인 엄마가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끝내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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