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이 의대에 갔다는 소식은 우리 모임에서 그 자체로 완벽한 ‘성공’의 상징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 진짜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그 집 이야기는 늘 부러움의 대명사처럼 입에 오르내렸다.
나 역시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자식이 저렇게 잘되면 어떤 기분일까.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고, 자다가도 이불킥을 하며 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뿌듯한 매일이 이어지지 않을까.
멀리서 바라본 그 집의 풍경은 그저 흠잡을 데 없이 반짝이기만 했다.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났을 때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다가, 나는 별생각 없이 가벼운 농담처럼 툭 말을 건넸다.
“야, 너는 진짜 좋겠다. 주변에서 다들 네 얘기하면 제일 부러워해.”
친구는 슬쩍 웃는 듯하더니, 이내 표정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얘가 나한테 그러더라.
‘엄마, 기억나? 나 시험 기간에 하나 틀렸을 때, 엄마가 나한테 나가 죽으라고 소리쳤잖아.’”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전하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는 대목에서, 방금까지의 가벼운 공기가 한꺼번에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사과했다고 했다.
다 너 잘되라고 한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엄마가 너무 심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나는 그 이야기가 상처를 꺼내놓고 사과하며, 서로의 응어리를 얼마간 풀어내는 화해의 결말로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근데 더 황당한 건 그다음이야. 의대 들어가고 1년쯤 지났나? 얘가 이러더라고.
‘엄마, 나 나중에 애 낳으면… 나처럼 키워줘. 아니, 나보다 더 완벽하게. 영어도 더 잘하게.’”
그러면서 아이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자기는 누가 옆에서 몰아붙이지 않으면 못 하는 성격인 것 같다고,
엄마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절대 못 왔을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분명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시간을 버텨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말들이 뼈아픈 상처로 남았는지.
그래서 눈물까지 흘리며 그 기억을 꺼내놓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왜, 그 고통스러운 방식을 끊어내는 대신 다시 이어가려 하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선택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통제 가능한 시간’ 속에서만 살아남는 법을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특히 입시는 그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공부한 만큼 점수가 나오고, 그 점수가 대학을 결정하는 세계.
그리고 그 대학이 결국 인생의 등급을 매긴다고 믿게 되는 세계.
그 안에서 ‘하면 된다’는 법칙은 의심할 틈도 없이 몸에 새겨진다.
어느새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방식이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다.
인생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통제 밖의 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사실 나조차도 그 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내 삶 또한 평생 ‘성과’라는 눈금자로 나 자신을 재단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 이 시간도, 일을 내려놓은 지금의 나도, 단 한 번도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라 예우해 준 적이 없었다.
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학위를 따고,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게으른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고, 무언가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끝없이 나를 몰아붙인다.
이번엔 글을 써봐야지 마음먹었다가도, 이내 속으로 되묻는다.
써서 뭐 하냐고. 돈도 안 되는데.
글재주도 없는데, 누가 읽어주기나 하겠냐고.
남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쌓아가는데, 내가 하는 이 일로는 내가 ‘무언가’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시간도, 고치고 또 고치는 시간도 분명 좋았는데,
‘이건 돈 버는 일이 아니잖아’라는 이유로 결국 나는 그 시간을 스스로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한없이 인색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문득 아이를 떠올린다.
내가 나 자신에게조차 ‘성과 없는 시간’을 허락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에게 “결과가 없어도 너는 충분히 귀하다”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세상은 원래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정답 없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나조차 배운 적이 없어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내 안의 불안을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막막함이 밀려올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더 열심히 해서 이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는 익숙한 공식을 다시 꺼내 드는 것뿐이다.
나 역시 '하면 된다'는 세상에서만 자라왔기에, 아이에게 더 좋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만 아는 게 이것뿐이라 답답할 뿐이다.
그렇게 나조차 내 안의 공식에 갇혀 허덕이던 때였다.
내 마음을 흔들어 깨운 건, 늘 빈손으로 돌아오던 우리 집 작은 낚시꾼이었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배스를 꼭 잡고 싶은 꿈을 가진 어린 낚시꾼이 살고 있다.
아이 옆에는 아들이 원할 때면 기꺼이 휴가를 내고 숙소를 잡고 배를 예약해 주는 아빠가 있다.
그런데 결과는 늘 같았다. 4년 동안 떠난 보트낚시에서 베스는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예전의 나는 그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지겨워서라도 그만둘 법한데, 대체 왜 저러나 싶었다.
애가 해달라고 해서 몇 번 해줬으면 됐지, 세상에 우리같이 돈도 없는 사람이 부자들이나 할 수 있는 시간낭비, 돈낭비를 일삼고 있다니 저 둘의 행동이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어느 날, 또다시 빈손으로 돌아온 아이에게 슬쩍 물었다.
“윤아, 물고기 진짜 안 잡히잖아. 안 속상해? 어떻게 참아?”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지난번에도 못 잡았잖아. 이제 슬프지도 않아. 그냥 평범한 일이야.
원래 잘 안 잡히는 거잖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면 돼.
난 여기에 물고기가 있다는 걸 믿고, 언젠간 물겠지라고 생각하는 거야.”
“봄에는 꼭 가야 해. 그때 큰 놈들이 움직이거든.
내 루어 액션이 완벽하니까 분명 물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소란이 조용히 잦아들었다.
아이에게는 이미 결과와 자신을 묶어버리지 않는 힘이 있었다.
잡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탓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적막한 시간을 ‘실패’가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아이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에 모질게 내뱉었던 친구의 말과,
4년 동안의 빈손도 평범한 일이라고 담담히 건네던 아이의 말.
그 사이에서 나는 묻는다.
‘도대체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쩌면 산다는 건, 아무리 애를 써도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향한 모진 채찍질을 멈춰보려 한다. 대단한 돈을 벌어온 것도, 화려한 학위를 딴 것도, 그렇다고 완벽한 주부로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 하루도 내 자리를 묵묵히 지켜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때로는 이 생활이 답답해 집을 박차고 나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도망치는 대신 매일 아침 아이의 밥을 차리고 곁을 지키는 길을 택하지 않았나. 비록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을지 몰라도, 나 역시 나만의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매일 성실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고 나를 다독여본다.
아이가 드리운 낚싯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던져도 입질 없는 고요한 수면을 마주하며 ‘왜 안 잡힐까?’, ‘이번엔 루어를 다르게 움직여볼까?’ 하고 스스로 묻고 고민하는 그 결핍의 시간. 아이는 그 막막한 공백을 자기만의 루어 액션으로 채워가며,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는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 믿는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를 내 틀 안에 가두고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앞에 놓일 결과 없는 시간, 실패, 그리고 막막한 기다림을 함께 통과해 주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고요한 수면 위에서도, 아이가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다시 낚싯대를 던질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아이의 빈 배를, 그리고 나의 빈 페이지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