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돌 같은 사람이다.
연애 시절, 나는 그의 무심함이 참 답답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도착하는 문자, “나 잘 들어왔어. 잘 자.”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그 짧은 문장을 보며 나는 습관처럼 한숨을 삼켰다.
‘또 이 말이네. 이걸 왜 매번 보내는 걸까.’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그의 언어는, 내 마음에 번번이 작은 갈증을 남겼다.
결혼 후에도 그는 변함이 없었다.
비슷한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점심 먹었어? 별일 없지.”
퇴근길에는 늘 같은 메시지, “나 퇴근~.”
그 단조로운 반복이 지겨웠다.
조금쯤은 변주를 줄 법도 한데, 저 사람은 왜 질리지도 않는 걸까 싶어 심드렁해지곤 했다.
그런데 그 돌 같은 사람이, 아주 가끔 마음의 결을 내보일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늘 어색해서, 오히려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 시어머니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남편이 무심하게 향수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고 한다.
“엄마, 이거 향수야. 한번 써봐.”
평생 그런 선물을 받아본 적 없던 어머니는 고맙게 받으셨지만, 끝내 한 번도 뿌려보지 못하셨다.
향수는 특별한 자리에나 어울리는 어색한 물건 같았고, 팍팍한 일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 향수는 서랍 속에 머물다, 친구의 손으로 건네졌다.
얼마 뒤 집에 들른 아들이 텅 빈 화장대를 둘러보다 물었다.
“엄마, 향수 어디 있어요?”
어머니가 솔직하게 친구를 주었다고 답하자, 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왜 그걸 남을 줘. 가서 찾아와.”
그는 한동안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고 했다.
향수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아들이 건넨 것은 향기가 아니라, 엄마도 여자로서 빛났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럽고 서툰 응원이라는 사실을 어머니는 뒤늦게 깨달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몇 년 전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어버이날,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건네준 카드 한 장.
“엄마, 내가 맨날 넘어져서 나 일으키느라 고생이 많아. 사랑해요.”
지금 생각하면 한 줄 한 줄이 귀한 진심인데, 그때의 나는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삐뚤한 글씨 속에는 억지로 쓴 듯한 귀찮음이 느껴졌고, 서툰 문장 속 ‘고생이 많다’는 표현은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워 오히려 낯설었다. 그 문장은 어딘가 내 기대와 어긋나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끝까지 읽고도, 무엇을 받은 건지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알아보기 쉬운 사랑에만 익숙했고, 어설픈 표현 속에 담긴 마음을 끝까지 따라가 보는 일에는 서툴렀다.
왜 아이가 ‘사랑해요’보다 ‘미안함에 가까운 말’을 먼저 건넸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제야 나는 멈춰 서서 질문을 던진다.
남편은 왜 그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까.
난 그 문장들이 그저 지루하고, 성의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들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하루의 끝마다 어김없이 도착하는 짧은 문장들.
“퇴근~.” “별일 없지.”
그 사람이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를 향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문득 남편이 건넨 주물 화로가 떠오른다.
검고 묵직한 물건이 처음엔 버거웠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단단한 질감에서 그 사람이 읽힌다.
말수가 적고, 매일 같은 모습.
쉽게 달아오르지 않지만, 오래도록 식지 않는 사람.
화로는 나를 더 깊고 고요한 시간 속으로 이끌어 줬다.
향수를 건넨 그의 마음도, 화로를 건넨 그의 손길도 어쩌면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당신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 나 지금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어.”
부끄러움을 꾹 참고 온몸으로 겨우 건네는 말.
이런 진심은 나를 아는 단계를 넘어, 나보다 조금 더 멀리까지 내다봐 주는 사랑에서만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이리라.
아이의 카드 역시 그랬다.
아이는 세상의 수많은 엄마가 아닌 '나의 엄마'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해 보려는 중이었다.
그 서툰 문장 안에는 분명 고유한 진심이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마음의 실체보다 얼마나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지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상의 효율과 세련됨에 길들여지는 사이, 어느새 나는 매끄럽고 흠잡히지 않는 것들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에게조차 한눈에 마음이 읽히는 방식을 기대했다.
그 안에 담긴 진심은, 그보다 한참 뒤에야 보였다.
서툴지만 진짜인 순간들,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감각.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손 한 번 잡는 일조차 어려워 서툴게 맴돌던 우리의 모습.
남편이 보낸 건 화려한 문장도, 값비싼 선물도 아니었다.
“어, 아니야...”라며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모습, 할 말을 삼키고 괜히 곁을 맴도는 방식이었다.
그때 나는 그 서툼 속에서 오직 나에게만 보내는 신호를 읽어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소중한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엔 갈고닦아야 빛나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진심은 그저 거친 결 그대로를 어루만질 때 비로소 온기가 전해진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매끄러움만을 위해 달려가는 나의 하루하루는 아이의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다행히 다시 숨을 쉰다.
처음 사랑을 시작하던 그때처럼, 말 한마디에 의미를 찾고 작은 신호 하나에도 마음이 바빠지던 그 조심스러운 떨림으로 아이를 배워가려 한다.
아이의 이 서툰 모습 또한 우리가 수줍게 맴돌던 그 시절처럼 결국은 찰나로 스쳐 갈 순간임을 안다.
부쩍 커버린 발을 바라보다 보면, 이 눈부신 서툼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 않는 시간이라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오늘도 어김없이 남편에게서 문자가 온다.
“퇴근~”
예전 같으면 무심히 넘겼을 그 짧은 신호에,
나도 누군가 보면 답답할 만큼 짧은 답장을 보낸다.
“조심해서 와. 이따 봐.”
곧바로 도착하는 답장.
“네~”
비록 매끄러운 포장지는 아니어도, 이 뭉툭한 주고받음 속에 우리가 서로를 놓지 않고 있다는 가장 정직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이제는 안다.
포장되지 않은 채 도착한 것들을,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 받아본다.
그 서툰 문장들이 사실은 나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보낼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조용히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