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간' 선생님이 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주 까다롭고, 지독히 솔직하며, 무엇보다 입맛이 정확한 나의 전속 미식가다.
이 작은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의 ‘간’을 본다.
연어를 꺼내 도마 위에 올리는 순간, 이미 등 뒤로 시선이 꽂힌다.
아, 오셨네. 턱을 괸 채 내 손끝을 쫓는 눈동자. 곧이어 엄격한 코칭이 시작된다.
“엄마, 연어는 좀 더 길쭉하고 얇게 잘라야 할 것 같아.” 첫 번째 훈수다.
“밥은 좀 더 꽉 잡아줘, 다 흩어지잖아.
그리고 밥 데우지 마. 나 삼각김밥도 차갑게 먹는 거 알지?” 확고한 취향.
“그리고 밥에 소금 간 하고, 그 ‘사알짝’ 새콤한 맛 있지? 그 밸런스를 살려야 해.”
그놈의 ‘사알짝’.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 모호한 경계를 맞추기 위해, 나는 매일 주방에서 진화 중이다.
아이에게 요리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재료마다 가장 빛날 수 있는 ‘어울리는 인생’을 찾아주는 일이다.
“오늘은 구워 먹자.
연어는 생으로 계속 먹으면 느끼하잖어. 데리야키 소스 발라서 토치로 살짝. 알지?”
“알지, 이제는.”
훈제 연어는 샌드위치로해줘.
한쪽 빵에는 크림치즈 듬뿍, 한쪽 빵에는 바질페스토, 엄마만 좋아하는 루꼴라는 제발 빼고 상추는 딱 한 장만. 양파는 투명할 만큼 얇게, 연어 위에 캐이퍼는 조금만, 하얀 소스는 ‘슥’.
이 ‘슥’이 핵심이다. 과하면 안 되고 없으면 서운한, 딱 그만큼의 존재감.
커다란 필렛을 사 온 날은 아이의 눈빛부터 달라진다.
“여기 흰 줄 있는 데가 뱃살이야. 여긴 초밥으로 하고, 두꺼운 쪽은 스테이크로 해줘.
미디엄으로 촉촉하게. 아, 간장에 물 아주 조금만 타고 고추냉이도 잊지말고 꼭 챙겨줘.”
“네, 셰프님.”
마침내 한 입.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숨을 참고 심사를 기다린다.
“엄마, 오늘은 꽤 괜찮네.”
그 ‘꽤’라는 한마디에 안도하려는 순간,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어 툭 내뱉는다.
“야, 간 선생. 너는 밥상에서는 그렇게 정확하면서, 엄마 점수 매길 때는 왜 이렇게 짜냐?
입맛만 짠 줄 알았더니, 애가 점수는 아주 소금밭이네.”
짠 점수를 만회해 보려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욕심이 앞선다.
"그래, 오늘은 제대로 칼칼하게!" 의욕에 앞서 김치찌개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이가 정해둔 '황금 밸런스'를 무참히 넘어서버린 선 넘은 매운맛.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를 보며 뒤늦게 아차 싶다. 식탁에 앉기도 전부터 아이의 단호한 평가가 벌써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비지찌개에는 새우젓으로 감칠맛을 올리고, 파스타에는 그라나파다노 치즈 가루를, 된장찌개에는 칼칼한 고춧가루를 한 꼬집 얹으며 아이가 정해둔 정교한 기준점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아이는 끝까지 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말도 분명하다.
“그냥 먹어.”
그건 맛을 포기하는 말이고, 결국 서로를 위해 간을 맞추는 정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니까.
그런 까다로운 미식가의 인생 1위는 ‘어린이집 김치’다.
아이는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하며 말한다. “간이 딱 맞았어.”
그건 정확한 짠맛과 감칠맛, 그리고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매운맛이 이룬 완벽한 삼각형이었으리라.
요즘 이 작은 미식가의 귀를 사로잡은 건 악뮤(AKMU)다.
아이가 일기장에 꾹꾹 눌러쓴 음악 감상평은 이렇다.
나는 악동뮤지션에 푹 빠졌다.
악뮤는 노래에 간을 아주 잘 맞춘다.
가볍고, 앙증맞고, 무겁다가도 쿨하고 시원하다.
악뮤는 노래가 뭔가 다르다.
다른 가수들 보다 뭔가 노래를 더 잘한다고 생각하고 남여콤비라 표현이 더 잘된다.
가수가 한 명이면 그냥 달다.
근데 두명이면 간이 아주 딱 맞는다.
음악도, 음식도, 세상 모든 것의 ‘간’에 관심이 많은 아이.
그 맑고 예리한 시선을 떠올리니 오늘 나는 조금 ‘매웠다’.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버렸으니까.
뒤늦게 미안함이 밀려와 참치마요 김밥을 내민다. 조금 더 달콤하게, 뾰족했던 마음의 간을 맞춰보려고.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나는 금세 ‘싱거운 사람’이 된다. 말을 줄이고, 눈치를 보며, 아이의 곁을 맴돈다. 그러다 못 참고 다가가 아이를 꽉 안아주면, 신기하게도 어긋났던 모든 간이 다시 맞아버린다.
간을 맞춰야 비로소 마음이 편하다.
너무 맵지도, 짜지도, 그렇다고 너무 달거나 싱겁지도 않은 엄마.
내일은, 좀 덜 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