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랭이의 노을(에필로그)

2부 연립사람들

by 규아

군산의 바닷바람은 짜고 무거웠다. 그 바람에 실려 온 소금기가 갓 이사한 월세방의 눅눅한 벽지에 달라붙는 것만 같았다.


이혼 서류를 접수하고,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서울의 삶을 도리질 치듯 정리해 두 딸의 손을 잡고 내려온 고향. 민정이는 자신이 꼭 말랭이 마을의 판자 조각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센 풍랑에 밀려 산등성이에 간신히 매달린,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위태로운 조각들. 일제 강점기 항구에서 쫓겨난 이들이, 전쟁통에 갈 곳 잃은 피란민들이 깃들었던 그 산동네로 민정이는 중년이 다 되어서 패잔병처럼 돌아온 것이었다.


잠든 두 딸의 얼굴 위로 처연한 노을이 내려앉았다. 민정이는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보았다. 이 가슴 시린 노을을 피하려 얼마나 멀리 달아나려 애썼던가. '평범'이라는 이름의 성을 쌓기 위해 스스로를 내리누르며, 자신의 인생에 새겨진 기구한 굴레를 벗겨내려 얼마나 버둥거렸던가.


민정이에게 가족이란 늘 반쪽짜리였다. 엄마와 단둘뿐인 고요한 집안에서 민정이는 늘 '온전한 가정'을 동경했다. 결혼생활이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십수 년을 악착같이 버틴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그 '불온전함'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사적인 의지. 그러나 평범함을 향한 그 집착이 되레 아이들을 숨 막히게 했고, 결국 아이들이 먼저 그 가짜 평범함을 거부하고 나서야 민정이는 깨달았다. 평범함이란 애초에 가질 수 없는 사치였음을.


민정이는 자리에 누워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낯선 월세방의 천장 위로 군산의 붉은 노을이 잔상처럼 머물다 흩어졌다. 그 붉은 빛을 따라 기억은 어느덧 시간을 거슬러 장지동 연립의 좁은 문간방 앞에 멈춰 섰다.


노을을 등진 채 가파른 골목을 오르던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엔 언제나처럼 검은 봉다리가 들려 있었다. 먹다 남은 간식이나 고기 몇 점이 전부였지만, 아저씨의 헛기침과 함께 부스럭거리는 봉다리 소리에 맞춰 집안의 웃음꽃이 피었다. 제비집같은 단칸방에서 다섯 마리의 아기새들과 어미새들이 뒤엉켜 쏟아져 나오는 풍경. 따뜻했지만 민정이에게는 한없이 부럽고 가슴이 무거워지는 장면이었다.


어린 시절처럼 지금도 민정이에게는 그 검은 봉다리를 들고 퇴근할 가장도, 다정한 둥지도 없다. 평범해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건만, 돌아온 것은 평범조차 사치였다는 서글픈 깨달음뿐이었다.


민정이는 그 풍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연립의 틈새마다 끼어 살던 사람들의 구질구질하고도 따뜻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문간방 혜정이가 보물처럼 꺼내 보여주던 낡은 반짇고리, 그 안에서 수줍게 빛나던 노란 계란과자 몇 알의 온기가 다시금 선명해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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