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질 너머의 선(善)

장지동 연립 – 2부 연립사람들

by 규아

군산 영화동 거리는 어린 민정에게 기묘한 동화 속 세상 같았다. 간판마다 붉은 전구가 깜박였고, 창문 너머로는 짙은 향수 냄새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길에는 미군부대에서 외출을 나온 미군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곁에는 머리를 곱게 말아 올리고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여자들을 보며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민정이는 그 말들의 뜻을 다 알지 못했지만, 어른들이 그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민정이의 집에 드나들던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이모들이 있었고, 그들은 늘 민정이에게 과자를 쥐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은 따뜻했고, 민정이는 그게 좋았다.


어느 날, 민정이는 영화동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붉은 간판들이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니, 어디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그때 누군가가 민정이의 손을 잡았다. 푸른 눈의 미군과 함께 걷던 젊은 언니였다.


“왜 울어?” 언니는 민정이를 데리고 작은 가게로 들어가 인형 하나를 골라 주었다. 민정이는 울음을 멈추지 못한 채 인형을 안고 있었다. 언니는 몇 사람에게 말을 걸어 민정이의 집을 물었고, 결국 민정이네 골목 앞까지 함께 와 주었다. 언니가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근처에 있던 어른들이 등을 돌리고 지나갔다. 누군가는 낮게 욕처럼 중얼거렸다. 민정이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아까 손을 잡아주던 따스함이 더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어른들이 있었다. 막내 삼촌의 친구들이었다. 거칠었고 팔이나 어깨에 무시무시한 문신도 있었지만 민정이가 집 안에 들어서면 모두가 순한 양이 되었다. 남들은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했지만 민정이가 본 그들은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그 삼촌들은 무남독녀인 민정이를 보며 자주 혀를 찼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유행이던 시절이었지만, 같은 학년에서 형제자매가 없는 아이는 민정이뿐이었다. 과잉보호와 학대의 경계가 보호한 엄마의 서슬 퍼런 훈육 아래서 민정이가 시달리는 것을 그들은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이 녀석, 나중에 커서 꽤나 삐뚤어지겠는데?" 그 삼촌들은 서로 민정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거나 힘들 때가 오면 자신들이 끝까지 방패가 되어주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정작 본인들이 세상의 선 밖으로 나간 장본인들이면서, 어린 민정이의 결에 생길 생채기를 걱정하는 모습은 실소 어린 감동이 되었다. 자신들의 인생은 거칠게 얼룩졌을지언정, 민정이의 삶만큼은 오점이 없기를 바라는 기원. 역설적이게도 민정이가 곧게 자라나길 가장 절실히 기도해 준 사람들이었다.


주변 어른들의 염려만큼 민정이는 늘 평범을 부러워했다. 다섯 자매가 북적이는 혜정이네 집처럼, 지극히 평범한 부모 밑에서 형제자매들과 싸우며 자라는 일상을 갈구했다. 하지만 그 특이함은 민정이에게 생각지 못한 선물을 남겼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곳에도 사람의 온기가 숨 쉬고 있으며, 다수가 믿는 선악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삶의 골목에서 체득한 것이다. 민정이의 평범하지 못한 유년은 역설적이게도 그녀를 편견없는 어른으로 키워낸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그 예민한 시선은 훗날 그녀의 인생에 예기치 못한 굴곡을 그려 넣는 복선이 되기도 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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