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실이 이모

장지동 연립 – 2부 연립사람들

by 규아

‘비실이 이모’ 역시 민정이의 평범하지 못한 유년을 채우는 소중한 조각이었다. 엄마의 냉정한 통제 아래 놓여있었던 민정이에게, 이모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따뜻한 훈풍 같은 존재였다. 유흥업소에 다녔던 이모는 늘 마른 몸으로 비실거린다고 해서 민정이가 직접 붙여준 별명이었다.


이모는 민정이의 엄마와는 정반대의 결을 가진 사람이었다. 엄격하고 차가운 엄마와 달리, 이모는 민정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주는 다정한 '엄마'였다. 이모가 오는 날이면 민정이의 책꽂이에는 읽고 싶던 동화책이 꽂혔고, 품에는 새 인형이 안겼다. 어린 민정이는 이모가 너무 좋아 "나중에 어른이 되면 2층집을 지어서, 1층엔 엄마가 살고 2층엔 이모가 살게 할 거야"라고 장담하곤 했다. 엄마는 처음엔 그런 이모를 경계했지만, 제 자식처럼 민정이를 아끼는 이모의 눈물겨운 진심을 읽고는 이내 이모가 민정이의 곁에 머무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한 번은 이모가 미군 아저씨와 함께 살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집안에서는 낯선 냄새가 났고,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었다. 푸른 눈의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민정이에게 노란 치즈 한 조각을 내밀었다. 당시의 민정이는 낯설고 비릿한 치즈가 싫었다. 도저히 삼킬 수 없었지만, 민정이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영악하지 못했던 아이는 치즈를 입에 넣고 혀 밑에 꼭꼭 숨겼다. 그러다 이모와 아저씨가 한눈을 팔 때쯤, 밖으로 나와 아무도 모르게 뱉어냈다. 거절 대신 택한 그 소심한 거부는 나약한 민정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민정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토록 다정하고 베풀 줄 아는 이모를 왜 친척들은 벌레 보듯 무시하는지, 왜 세상은 이모의 이름 앞에 주홍글씨를 새기는지 말이다. 신기하게도 이모의 집안은 소위 말하는 뼈대 있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이었고, 여동생은 수녀였다. 세상의 눈으로 평범하고 고결한 나무에서 이모라는 가지 하나가 엇나간 셈이었다.


하지만 민정이는 보았다. 남들이 인정하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이모는 그 누구보다 도리를 지킬 줄 알았고 타인에게 베푸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비난이 거세질수록 민정이는 다짐했다. 나중에 아주 큰 사람이 되어서,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게 이모를 꼭 지켜주겠노라고.


비실이 이모를 보며 민정이는 삶의 지독한 모순을 배웠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어두운 곳에 사람을 품어주는 지극한 선(善)이 숨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세상이 우러러보는 고결한 자리가 누군가의 숨을 조이는 악(惡)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민정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의 뒷면을 보는 법을 익혀갔다. 그것이 장차 민정이의 삶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들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한 채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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