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속에 잠긴 수레

장지동 연립 – 2부 연립사람들

by 규아

노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지만, 받아내는 이의 삶에 따라 전혀 다른 색으로 읽힌다.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위로의 빛깔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안도감의 표식이다. 하지만 장지동 그 아주머니에게 노을은, 남들이 하루를 마칠 때 비로소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거리로 나서야 하는, 그녀만의 외롭고도 고된 출근길이었다.


아주머니는 본래 온실 속의 꽃 같은 평범한 주부였다. 이름 있는 회사에 다니던 건실한 남편과 고등학생 남매를 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의 안주인이었다. 건장하던 남편이 갑자기 ‘풍’을 맞아 쓰러지기 전까지는. 뇌졸중이라는 병명보다 ‘풍’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던 시절, 사회보장제도조차 미비했던 그때, 가장의 쓰러짐은 곧 집안의 몰락을 의미했다.


폭삭 내려앉은 집안의 기둥을 대신해, 살림만 하던 아주머니가 잡은 것은 포장마차의 차가운 손잡이였다. 노을이 번질 무렵이면 아주머니는 장지동 집에서 군산 터미널까지, 족히 20분은 걸리는 그 먼 길을 무거운 포장마차와 함께 걸었다.


민정이는 가끔 터미널 근처에서 수레를 밀고 오는 아주머니와 마주치곤 했다. "민정이구나." 아주머니는 짧게 아는 체를 했지만, 시선은 이미 저 멀리 장사 터를 향해 있었다. 도로의 틈에 수레바퀴가 걸려 덜컹거릴 때마다 포장마차 안에 실린 수저와 그릇들이 쨍그랑거리며 비명을 질렀고, 석유통에서는 출렁이는 기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땀을 훔칠 여유도 없이 굴리는 바퀴가 내는 쇳소리는 아주머니가 온몸으로 내뱉는 신음처럼 들렸다.


민정이의 기억 속, 늘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아주머니의 얼굴에서는 어느덧 감정이라는 것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표정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고, 눈빛은 앞만 보고 있었다. 슬픔이나 절망 같은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생존의 줄이 끊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방어였을 것이다.


아주머니의 일상은 굳어있는 얼굴만큼이나 쉴 틈 없이 빠듯했다. 오전에는 반신불수가 되어 잘 걷지 못하는 남편을 부축해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재활 운동을 시켰다. 오후에는 집 밖에 있는 차가운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포장마차에 낼 재료들을 손질했다. 아이들과 남편의 저녁거리까지 서둘러 차려놓고 나면, 하늘은 어김없이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 바알간 노을이 하늘 가득 번질 때면 아주머니는 거대한 수레를 밀고 세상 속으로 나갔고, 달빛조차 잠든 새벽이 다 되어서야 젖은 어깨로 돌아왔다. 민정이는 노을 속으로 사라지던 아주머니의 무거운 뒷모습을 보며 막연히 느꼈다. 인생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바다와 같아서, 잔잔한 수면 아래 언제든 휘몰아칠 거대한 파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민정이는 군산 터미널 근처를 지날 때면 한 번씩 걸음이 멈춘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포장마차들이지만, 안주가 익는 연탄불의 매캐하면서도 뿌연 연기 속에서 말없이 재료를 다듬던 아주머니의 굳은 옆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 아주머니는 자신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그것이 핏빛 울음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하루를 버티기 위한 체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아주머니는 삶의 절망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때로 설명할 수 없는 불행을 던져주지만, 어떤 이들은 그 불운을 묵묵히 제 삶의 일부로 받아내며 수레를 민다. 민정이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거창한 희망이나 대단한 각오가 아니더라도, 지는 해를 등지고 매일 같은 길을 나섰던 그 지루하고도 무거운 발걸음 자체가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생존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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