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소리와 눈깔사탕

2부 연립사람들

by 규아

군산은 묘한 도시다. 바다를 품고 있는 이 항구 도시에는 유달리 무당집이 많다. 거친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만선을 꿈꾸고, 때로는 돌아오지 못한 넋을 위로해야 했던 이들에게 신(神)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 무당집의 빨간 깃발 사이사이로 십자가가 세워진 교회 역시 숲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호남 최초의 선교지였던 군산은 배를 타고 온 외래의 개신교와 바다에 뿌리 내린 고유의 신앙이 혼재된 채 발달해왔다. 짬뽕의 얼큰함 속에 이질적인 재료들이 섞여들 듯, 군산 사람들의 인생 속에는 이토록 서로 다른 사연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장지동 연립 앞, 말랭이 중턱에도 그 사연의 파편 하나가 박혀 있었다. 산 그림자를 등지고 선 위태로운 초가집. 그 집 대문 위로는 빨간색과 흰색 깃발이 나란히 꽂혀 기괴한 날갯짓을 하며 바람에 펄럭였다. 민정이의 엄마는 유독 점사를 좋아했다. 사는 게 고단해질 때면 엄마는 민정이의 손을 끌고 그 가파른 말랭이를 올랐다.


퀴퀴한 향냄새가 코를 찌르는 좁은 신당 문을 열면, 벽면을 가득 채운 신령님들의 눈동자가 민정이를 덮쳤다. 서슬 퍼런 눈을 뜨고 아래를 굽어보는 장군님과 부채를 든 선녀의 눈동자는 민정이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오는 듯해 숨이 턱 막혔다. 무당 아주머니가 부르르 떨며 놋방울을 들어 올릴 때면, 날카로운 금속음이 신당의 공기를 잘게 쪼갰다. 민정은 그 쇳소리에 심장이 쪼그라들어 엄마의 치마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자, 이거 하나 먹어라.” 하지만 공포의 안개는 아주머니가 내민 큼지막한 눈깔사탕 하나에 흩어졌다. 아주머니의 손등은 겨울바람에 트고 갈라져 거칠었고, 손톱 밑에는 미처 씻어내지 못한 흙 때가 끼어 있었다. 신의 목소리를 전한다는 위엄 뒤에 숨겨진, 밥벌이에 지친 한 여자의 고단한 손이었다. 민정은 사탕을 받아 쥐었지만 차마 입에 넣지 못했다. 사탕을 삼키는 순간 귀신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올 것만 같아, 신당을 나오자마자 담벼락 모퉁이에 그 사탕을 몰래 내려놓았다.


그 아주머니에게 무속은 종교라기보다 거부할 수 없는 ‘종신형’에 가까워 보였다. 신은 영매가 잘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한다. 배가 부르면 신을 모시지 않기에, 딱 죽지 않을 만큼의 가난 속에 가두어 둔다. 남의 불행을 막아준다는 아주머니였지만, 정작 남편은 사고로 눈을 잃었고, 신당까지 모신 단칸방에서 점사를 칠 때면 시어머니는 추운 날에도 어린 아들 선남이를 업고 골목 끝을 서성여야 했다. 민정이는 그 초가집을 오가며 운명의 사슬이란 거부하려면 할수록 조여드는 올가미 같은 것일 거라고 어렴풋이 느꼈다.


아주머니는 민정이의 험난함을 예견한 듯 한마디를 외쳤다. “너도 잘못하다간 내 팔자가 되니깐 정신 똑바로 차려. 딴생각 말고 공부만 해.” 간절하고도 매서운 경고가 어린 가슴을 때렸다. 죄를 지은 듯 아무 말도 못한 채 엄마를 따라 도망치듯 언덕을 내려오던 나약한 민정이의 손에는, 무당 아주머니가 남긴 차가운 사탕의 감촉과 함께 '팔자'라는 단어가 문신처럼 새겨지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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