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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Jul 30. 2018

한남동, 너의 이야기

<週刊 태이리> 제13호

30년 넘게 한남동에서 살았습니다. 한남동은 하늘 가까운 윗동네와 물 가까운 아랫동네로 구분되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차로 3분이면 가는 800미터 남짓한 거데, 그 가까운 한 달에 한 걸음씩  셈입니다. 그동안 부모님은 칠순을 넘기셨고, 저는 그 젊음을 아무 죄책감 없이 갉아먹으며 한남동과 함께 나이 먹었습니다. 1980년의 한남동은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 난 소년이었는데, 지금도 무럭무럭 는 중입니다. 욕심많은 아이죠.


#1. 원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남동 재개발 제가 초등학생이던 88올림픽 시절부터 동네 강아지 사이에서도 떠돌았던 이야깁니다. 워낙 오래된 말이전래동화나 영웅전설처럼 막연하고 아득했습니다. 아직 무소식인 곳도 많지만, 2010년쯤부터 조금씩 기미가 보였습니다. 재개발의 서막은 오산고 옆 한남 리버힐과 한남역 바로 앞 하이페리온이었어요. 부동산 거품이 마을을 휩쓸었는데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면, 평(㎡)당 얼마였다가 다시 또 얼마를 넘겼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들이 계속 들려 왔습니다. 집 가진 사람들은 금방 부자가 될 상상에 들떴고, 세든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가야 할지 몰라 복잡한 한숨 쉬었습니다.             

▲ 젠트리피케이션은 한남동에서 여전히 뜨겁다.

제가 살던 빨간 기왓집에 광풍이 불어닥친 건 2006년입니다. 생애 첫 이사를 그때 했는데, 구질구질한 살림이 꽤 많더군요. 짐을 챙기며 이상하게도 묘한 감정이 꿈틀댔습니다. 빨래 걸던 좁은 마당이 갑자기 아늑해 보였고, 형누나와 함께 사진을 찍곤 하던 애기손등만한 꽃밭도 정겨워졌습니다. 이 낡고 불편한 집이 헉 소리 날 정도로 창피하고 징그럽게 싫었는데, 막상 페이지를 넘기려니 뭔가 아련해졌던 겁니다. 아이고 참. 오래된 것들은, 그리고 세월을 함께 견딘 것들은, 그렇게 슬그머니 추억이 되고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하나 봐요.    

▲ 녹슨 문과 떨어진 기와, 옛집은 폐가가 됐다.

기억합니다. 한남동의 거친 풍경과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던 사람들이 눈앞에 생생해요. 눈을 감고도 한남동숨결 하나까지 선명하게 그려낼 자신이 있습니다. 단국대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한남초를 가려면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어요. 뻥 아니에요. 뭐아무도 믿어주지 않아도,  눈에 새겨져 있는 모습입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백인이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닮은 ‘영길이’의 촌스런 이름도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한 동네 살았으니까요. 금발과 파란 눈동자가 멋진, 동시에 순돌이보다 구수한 이름을 가진 내 친구 영길이. 저는 그 애 혼자 미군부대를 맘대로 드나들던 게 내심 약올라, 튀기라 놀리며 주먹질도 하고 어떤 날은 왕창 맞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도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놀았는데 참 단순하죠. 지금 보면 SNS에 올라 한참 욕 먹을 혐오표현인데요. 그나저나 매운 김치를 저보다 더 잘 먹백인 친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가 궁금합니다.  

  

#2. 종교가 나란히 섞이고 교차하는 곳

한남동의 묘한 풍경 중 하나는 일요일 아침입니다. 성경책을 끼고 교회로 가는 발걸음과 히잡과 터번을 두르고 이슬람사원으로 가는 이국(異國)적인 뒷모습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 깍지 낀 손가락처럼 교차니다. 우리집에서 한광교회로 가려면 ‘도깨비 시장’이라는 곳을 지나야 합니다. 이름부터 참 토속적인 이곳은 한남동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한남 마추픽추(Machu Picchu)’라고도 불립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습니다. 그렇죠? 제법 잘 어울리죠? 사실은 제가 한남동 이야기 시작할 때 즉흥적으로 갖다 붙인 거예요. 고마워요. 모르고 들 땐 꽤 괜찮죠?

▲ 한광교회와 이슬람사원은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다.

어릴 때 습관처럼 교회를 그냥 다녔는데, 여러 이유로 가기 싫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좀 숨 막혔어요. 뭐, 남몰래 연정(戀情)을 품고 있던 교회 누나들이 귓볼을 살살 간질인다면 모르지만, 다른 걸로는 꿈쩍도 안 합니다. 가기 싫단 말이죠. 목사님께서 알면 혀를 끌끌 차셨겠지만, 저는 교회를 빼먹고 이슬람사원에 종종 가곤 했습니다. 낯선 그들이 신에게 바치는 노랫가락을 감고 따라가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처연하고 경건한 기분이 듭니다. 중동의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삼킨 듯한 하얀 계단을 조심스럽게 쓸어보며 그곳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마치 지구 바깥인 줄 알았던 그곳에 어른이 되기 전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적 한참 했던 것 같습니다. 칫, 아직도 못 가봤네요.


▲ 여기서 좌우로 한광교회와 이슬람사원 길이 갈라진다.

크리스마스 때 한남동 성당에 간 적도 몇 번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요. 복잡한 그 먹자골목과 환자들로 북적거리는 순천향병원 사이에 이렇게 조용한 곳이 있다는 건 꽤 매혹적이잖아요. 아기 예수와 성모상을 보면 마음하얘지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면 성당 특유의 차분한 느낌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매운 맛 좀 보시려면 예배를 마치고 성당 옆 ‘동아냉면’에 가보시는 것도 좋아요. 사시사철 냉면만으로 승부하는 곳이거든요. 슴슴한 평양냉면과는 달리, 아주 싸구려 매운 맛인데 중독성이 강합니다. 보광동 삼거리의 작은 식당이 분점을 여럿 내면서 제법 큰 사업이 됐습니다. ‘사운즈 한남’이라는 카페도 바로 옆인데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시더라고요. 한남동 이야기 할 거면, 여기도 꼭 가봐야 한다면서.    


#3. 겹겹이 쌓인 비밀의 동굴같아

글을 쓰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한남동은 종교적으로도 참 복잡한 곳 같습니다. 한남동과 그 주변인 보광동 일대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부군당(府君堂)도 몇 개 있거든요. 도심 한 복판에 숨어 있는 기도터라니 좀 생뚱맞죠. 암튼 제가 기억하는 곳은 두 개인데, 첫 번째는 오산고등학교 후문에 맞바로 붙어 있는 ‘김유신 사당’입니다. 삼성리버탑 아파트에서 그 속이 훤히 보이죠. 궁금하죠? 신라가 고구려와 전쟁을 치를 때, 이곳 물이 얕아서 김유신 장군이 여기에 배수진을 쳐 승리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곳 사람들을 후하게 대해 준 인연으로 김유신 장군을 신(神)으로 모셨다고 요. 가서 보면 아시겠지만, 여기서는 한강이 한 눈에 보입니다. 오산고 경치도 죽여주죠. 아끼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고 함께 가세요.

▲ 한강 뷰만 보면 오산학교가 국내 최고일 것 같다.

두 번째는 ‘보광사’입니다. 몇 번 지나가다 봤지만 별로 크지는 않고 좀 초라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도 구석진 골목에 있어서 길찾기 도보 네이게이션이 없으면 웬만해선 찾기가 어렵습니다. 특이한 점은 중국의 ‘제갈공명’을 모신다는 겁니다. 동묘(東廟)가 ‘관운장’을 모시는 곳이라던데, 그것만큼 여기도 정말 의외이지 않나요. 유래를 찾아보니, 옛날 중국 상인들이 조선에 올 때 서해 쪽에서 한강을 거슬러 오다가 이곳에 배를 많이 대었다고 합니다. 한 번 쉬었다 가는 거겠죠. 지금의 보광동에서 제갈공명을 모셨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한강 근처엔 이런 게 많다고 합니다.   

▲ 중앙에 모신 게 제갈공명이고 양옆에 장군들이 서 있다.

한남동에는 보살과 선녀라고 간판을 단 유명한 점(占)집도 많습니다. 순천향병원 건너편 대사관로에 막 몰려 있는데, 아마도 하이야트 호텔 뒤부터 한남동 인근의 재벌가들을 VIP 고객으로 두는 것 같습니다. 묻고 싶은 궁금한 게 많으시겠죠. 제가 안까지 직접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슬쩍 보기엔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는 큰 집들이었습니다. 머리를 길게 땋은 남자 분들이나 화장을 짙게 한 여자 분들을 어릴 적 종종 뵈었습니다. 이렇게 적고보니 한남동은 정말 이상한 동네같네요. 에이, 뭐 꼭 그렇진 않아요. 놀러오세요. 아무튼 이곳에는 기독교와 카톨릭과 이슬람, 그리고 절과 무당과 민속신앙이 층을 달리하며 사이 좋게 살고 있습니다.

    

▮ 덧붙이는 말 ▮ 

1. 네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가 더 시원할 정도예요. 독자분들 건강 조심하세요.


2. 한남동 이야기는 총 10편으로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제 친구들, 가족, 이웃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적으려고요. 모자이크를 아무리 해도 주변 사람들은 다 알아보는 것처럼, 아마도 이니셜 처리가 큰 효과는 없을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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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커버그림은 임상희 작가 양해를 구하고 올렸습니다. 이미지의 모든 저작권은 임상희 작가에게 있습니다. 잃어버린 달동네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는 현대적 의미의 진경산수화를 그립니다. 섬세한 붓터치가 참 매력적이죠. 참 부럽네요.

https://www.facebook.com/artist.sa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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