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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Sep 17. 2018

우리 삶 주변의 글쓰기들

직장인의 쓰기생활

가을로 가는 길목, 9월입니다. 대학교 수시모집 기업 하반기 채용이 시작되는 시기죠. 아마도 고3과 취준생들은 이번 추석에 정신이 없을 것 같네요. 그래서인지 자기소개서를 한 번 봐달라는 부탁이 자주 들어옵니다. 가을은 또 결혼의 계절인가 봅니다. 주례사나 축사를 찾는 분도 계셨거든요. 웬만한 부탁은 정중하게 거절하지만, 직장인에게는 그들만의 사정이란 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팀장 아들이 대입을 앞뒀다든지 상무님 딸이 취업을 준비하거나 결혼을 하는 경우죠. 월급쟁이가 별 수 있나요. 먹고 살아야지.


#1. 말과 글의 힘을 믿나요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글은 본래 누가 대신 써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생각, 감정, 이야기들을 자신만큼 잘 아는 건 아무도 없으니까요. 오죽하면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내가 이렇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위해 마침표 하나도 찍어줄 수 없는 게 글쓰기다”라고 탄식하듯 털어놓았을까요. 글쓰기는 ‘나’에서 시작해 어떻게든 ‘내 힘’으로 결승선까지 달려야 하는 외롭고 힘든 시합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단어를 이리저리 주물럭거려야 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가 글쓰기와 닮았다고 말했다.

글쓰기를 할 때 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저 같은 ‘스피치라이터’는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일 겁니다. ‘말과 글’은 스스로 써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신 분께 ‘스피치라이터’라는 직업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나쁜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듣는 사람을 속이는 짓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과 글의 힘을 믿고, 진정성을 소중히 하시는 분들니다. 제가 감히 스피치라이터를 대표할 순 없지만, 말글쟁이의 한 명으로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오바마의 연설은 친근하지만 그 준비는 치열하다.

남의 글을 써준다는 데 거부감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안심하셔도 됩니다. 스피치라이터는 그분의 말을 ‘대신’ 쓰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연설문을 쓴다는 건, 대필(代筆)이 아니라 그분의 신념과 생각을 조직의 과제로 바꿔내는 통역과 같은 일입니다. 어떤 상품이나 정책을 고객과 국민에게 가장 잘 알릴 수 있도록 더 좋은 표현과 보다 적합한 에피소드를 찾아주는 겁니다. 때로는 조직의 이야기를 그분의 목소리와 캐릭터에 입히기도 합니다. 스피치라이터는 거기까지 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그분께 강요할 수 없습니다. 말의 주인(主人)은 ‘말하는 사람(Speaker)’이지 ‘쓰는 사람(Writer)’이 아닙니다. 저는 없는 걸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상황과 목적에 가장 맞는 말과 글을 그 주인에게 돌려줄 뿐입니다.


#2. 건배사부터 연설문과 축사까지

스피치라이터는 주로 회사나 기관, 정당(政黨)에 속해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제 경험으로는 아직까지 ‘프리랜서’ 스피치라이터를 본 적은 없습니다. 어딘가 계실지도 모릅니다. 검은 백조를 발견하기 전까지 ‘백조는 모두 하얗다’고 보는 것처럼요. 그건 아마도 이 분야의 시장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효율성과 실리를 맨 앞에 두는 사회에서는 모든 게 전문화 되어 있어서, 미국에서는 말과 글을 쓰는 직장인이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결과만큼 예의와 관계를 더 중시해서 스피치라이터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숨어서 하는 일의 특성때문에 고스트라이터라는 별명도 붙었죠.

▲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뒤에는 신동호 연설비서관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스피치라이터 출신이 작가나 강사로 활동하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쓰신 강원국 선생님은 이제 위트 넘치는 방송인으로 한 단계 격을 높이신 것 같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며 거장의 말과 글을 배웠습니다.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을 쓴 이기주 작가는 베스트셀러를 계속 내고 있습니다. 그는,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MB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의 프로필을 찾아보다가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산뜻했던 ‘언어의 온도’가 갑자기 습하고 끈적하게 느껴지는 건 저만의 기분 탓이겠죠? 신념을 갖고 스피치라이터로 일했을 텐데, 이제와서 이력을 감추는 건 옳지 않아 보입니다.  

▲ 잘된 결혼식 축가는 신랑신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저는 CEO의 말과 글을 쓰면서 월급을 받는데, 가끔은 주변 분들의 글쓰기를 소소하게 돕기도 합니다. 작게는 맞춤법을 고치거나 비문(非文)을 다시 쓰고, 크게는 글의 방향과 문맥을 조언하고 이야기의 색깔을 찾아줍니다. 글을 시작하며 말씀드린 것처럼, 최근엔 자기소개서와 결혼식 축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자기소개서는 아직 입시가 끝난 게 아니라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축사는 꽤 감동적이었다고 합니다. 신랑과 신부가 울었다고 하 나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저도 좀 쓸만하죠? 잠시 광고 하자면 <주간태이리> 3개월 구독하신 분께는 프리미엄 글쓰기 서비스를 1회 제공합니다. 말만 잘하면 두어번 더.


#3. 텍스트를 넘어 영상으로

회사에서 쓰는 연설문이나 칼럼이 아닌, 평범한 삶 근처의 글을 다듬다보면 느낌이 다릅니다. 이 말과 글이 누군가에게는 큰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특별한 날을 더 아름답게 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작게는 술자리 건배사를 하며 흥을 돋구고 눈길을 끌 수도 있습니다. 보험사 FC분이 증서와 함께 고객에게 건네는 편지, 반려동물 장례 스타트업이 고객에게 보내는 위로 편지, 남이 썸녀에게 보내는 다섯 줄의 카톡 화해 메시지, 회사를 떠나며 용기를 낸 이메일 사표까지 여러 종류의 글을 봤습니다.

▲ 잘 된 건배사는 술자리를 빛나게 한다. (출처:효성 블로그)

‘글’에는 다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모든 게 다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비즈니스와 정치판의 글이 아니라, 생활에서 살아 움직이는 말과 글을 보면 제가 하는 일이 더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말과 글이 잘 오고가면, 세상 전체가 잘 돌아간다는 편안한 느낌을 받거든요. 이곳을 좀 더 따뜻하고 효율적이게 만드는 데 나도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는 황홀한 기분마저 듭니다. 저는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고, 방법을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고요.

▲ 10월까지 휴넷 해피칼리지에서 강의 실력을 다툰다.

글보다 쉽고 편리하게 독자 분들을 만나고 싶어, 최근에 8분짜리 동영상 강의를 만들었습니다. 온라인 교육업체인 ‘휴넷’의 <해피칼리지>라는 플랫폼에 제가 떠들 인터넷 공간을 소박하게 열었어요. 헤어스타일이 좀 구리고 표정도 엉성하지만, 좀 더 생생하고 친숙하게 여러분들께 다가갈 수 있게 됐습니다. 캠퍼스 이름은 <직장인의 쓰기생활>인데 첫 번째로 다룬 주제는 ‘당신이 책을 못 쓰는 세 가지 이유’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찾아뵙게 되는 그날도 조만간 올 것 같습니다. 염치없지만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모든 직장인이 내 이야기를 하는 세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 거기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덧붙이는 말 ▮    

1. [광고] 제 강의 동영상은 아래 주소를 눌러 볼 수 있습니다. 무료로 수강신청하시고, 별점과 후기 남겨 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8분 내외의 짧은 강연입니다. (https://goo.gl/sqcJ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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