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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Nov 14. 2018

내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나

<週刊 태이리> 제28호

“내 인생은 한 편의 소설(小說)이야!” 술만 마시면 이런 분 많습니다. 맞아. 이 지리멸렬한 일상을 재밌는 소설로 바꿔보자. 그런데 어떻게? 제 생각에는 쓰기 전에 일단 한 줄로 줄여보면 답이 나옵니다. ‘서울 한남동에서 태어나 80년대를 지나온 다섯 명의 친구들이 바라보는 일과 삶의 의미와 애환’ 그게 제가 쓰고 싶은 자전적 소설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삶을 소설로 바꿔내고 싶으시면 따라오세요. 저도 소설쓰기는 처음이지만 아는 대로 쉽게 다 알려드립니다. 소설 구성의 3요소, 인물-사건-배경을 거꾸로 설명해 드릴게요   


#1. 배경, 가장 잘아는 한남동과 종로

제가 쓸 소설의 이름은 <한남동 원주민>입니다. 한남동을 주요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週間태이리> 한광교회부터 이슬람성당으로 이어지는 밤의 능선을 더듬거리고, 다락방의 먼지 낀 추억들도 소환했던 겁니다. 저는 또 이태원의 흑역사를 고백했고, 가난한 아버지를 추억했습니다. 부족한 자료는 옛날 앨범을 뒤지고 서울역사박물관과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작은 것까지 기억하려 애썼죠. 그런데 몇 주 전부터 한남동만으로는 제가 기대하는 이야기를 다 쓰긴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광교회와 이슬람사원, 하얏트와 서울타워가 절묘하다.

‘한남동’은 캐릭터의 성격이나 숨은 욕망을 보여주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충분히 매력적이죠. 하지만 그걸로는 짧은 에피소드를 고작 한 두 개쯤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공감을 얻고 확장성을 가지려면 ‘나’를 이야기하되, 동시대의 여러 ‘나’들을 이야기해야 하니까요. 더 크고 모두에게 익숙한 무대를 찾다가 발견한 장소는 서울 구(舊)도심의 중심인 ‘종로’입니다. 여기라면 제가 나고 자란 어린 시절부터 먹고사는 직장인의 모습까지 다채롭게 그려낼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들었습니다.       

▲ 익선동(좌)과 종각타워(우)는 종로의 두 모습이다.

저에게 한남동은 순수와 욕망이 뒤섞인 추억이고, 종로는 직장인의 애환이 휘몰아치는 현실입니다. 나고자란 한남동에 머물지 않고, 먹고사는 종로까지 넘나들어야 이야기가 더 생생하고 풍성해집니다. 강남과 맞닿은 한남동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생겨나 발전하고, 어디부터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습니다. 종로에서는 취업, 승진, 보고서, 야근, 이직, 퇴사, 그리고 퇴근길에 만나는 박근혜의 탄핵같은 굵직굵직한 한국 정치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스케치할 수 있을 거고.    

     

#2. 사건, 나 중심의 특별한 일들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공간을 선택했다면,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또 한 번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한다는 건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지나온 삶을 관통한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주제에 맞는 몇 가지만 쏙 뽑아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소설 속의 사건은 대부분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는데, 그게 꼭 사실 그대로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위에 상상력을 덧씌워 재창조해도 되고, 할 수만 있다면 그럴 듯하게 몽땅 다 만들어 내도됩니다. 그런 걸 ‘개연성(蓋然性)’이라고 부르죠. ‘있을 법한 거짓말’이요. 쓰다보면, 없는 일을 지어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소설을 쓰는 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거고, 과장해서 말하면 신(神)의 영역에 영역에 도전하는 겁니다.                   

▲ 막연하다면 이런 책들을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대부분은 여기서부터 막힙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웃긴 소리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갈피를 잡기 힘든데, 이럴 땐 이력서를 쓰듯 연도별로 출생, 초중고교 입학, 대학교 졸업, 연애, 군입대, 취업, 결혼같은 중요한 내용들을 시간 순서대로 적어보면 조금 쉽습니다. 저는 회사의 역사를 담는 ‘사사(社史)’라는 걸 두어 번 만들어 봤는데요, 그걸 잘 살펴보면 대부분 ‘창립-성장-시련-도약-중흥-혁신’과 같은 키워드로 시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 개인의 삶을 현대사 속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지(知)의 거장’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책 <자기역사를 쓴다는 것>에서 ‘자기 인생의 연대표’를 만들어 보라고 조언합니다. 단순히 친구나 연인, 가족과 같은 개인적인 기록만 적지 말고, 동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표시하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따로 살아가지만, 동시대의 사건과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함께도 살아왔습니다. 개인적인 체험과 공동체의 역사가 적절하게 맞물리면 상황들이 더 생생해집니다. 저는 박정희 정권 끝물에 태어나 시대가 뒤숭숭했고, 초등학교 입학한 86년에 아시안게임이, 그리고 3학년 때 88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중1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를 했고, 대학교 3학년 때는 2002 월드컵이 있었네요.


#3. 인물, 진짜보다 매력있는 가짜    

자, 그러면 저는 어떤 인물들을 이야기 속에 풀어놓아야 할까요. 일단은 동네 친구들 다섯 명, 회사 동료나 상사 서너 명쯤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좀 자세히 말하면, 친구들의 키나 체중, 아버지의 직업, 학교 성적, 헤어스타일까지를 디테일하게 묘사할 겁니다. 회사 사람들은 어리바리하고 이기적인 김 사원, 일에 찌든 정 대리와 최 과장, 알콜중독 박 차장, 실력 있지만 기반이 없는 경력사원, 멍청하고 게으른 이 팀장, 모든 일에 숫자를 들이미는 또라이 김 상무를 드라마 <미생>처럼 흥미진진하게 그려낼 겁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진짜이기도 하고 일부는 가짜이기도 하죠.          

▲  <미생>은 직장인 드라마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이야기를 단순하게 풀어내려면 콩쥐와 팥쥐처럼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좋을 거고, 좀 더 복잡한 주제를 말하려면 ‘워킹데드’처럼 ‘입체적’으로 꾸며야 할 겁니다. 거기 보면 주인공 릭 그라임스(앤드류 링컨)나 데릴(노만 리더스)이 나오는데, 둘은 시즌이 바뀔 때마다 상황에 따라 성격이 휙휙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평면적 인물은 후지고, 입체적 인물이 세련된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둘을 적절하게 섞어야 긴장감이 유지되면서 동시에 주제의식도 선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이 둘만큼 극적으로 가치관이 바뀌는 인물도 없다.

저는 소설 초보니까 좀 뻔해도 쉬운 길을 좀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선택할 생각입니다. 나쁜 놈과 착한 놈을 처음부터 정해 놓고 시작할 겁니다. 성격이나 태도가 바뀐다고 해도, 그건 아주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변하게 할 거고 결국 본성은 그대로라는 걸 알려줄 겁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소설 한 편 다 쓴 것 같네요. 이젠 유명해질 일만 남았습니다. 판교 스타트업의 일상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담아냈다는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공장 다니며 인터넷에 글 올려 인생이 바뀌었다는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 딱 그 만큼만 뜨고 싶습니다.


▮ 덧붙이는 말 ▮     

1. 소설 쓰는 게 어렵습니다. 다른 일도 몇 개 진행 중이고요. 죄송스럽지만 <週間태이리>는 격주로 줄여서 발행할 생각입니다. 이해해주세요. 2주 짧습니다. 소설 쓰는 건 무척 긴 작업이고요.

                  

2. 소설 쓰려면,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두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상처를 매일 끄집어 내야 하고 조금 찌질해도 됩니다. 일단 쓰면, 사람들은 ‘유니크하다’며 박수 칠 테니까 걱정 마시고요. 이상(李箱)의 <날개>나 <권태>같은 거 보세요. 소설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닌가요.    

                

3. 요새 회사생활이 힘듭니다.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네요. 짬을 내 쓰고 있습니다. 커버사진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 <트럼보>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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