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태어났을 때 어땠어?
연년생 딸딸아들중 둘째 딸로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기뻤다고 했다. 아빠는?이라는 질문에 엄마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가만히 있던 엄마는, 또 딸을 낳았다고 쫓겨날까 두려웠다고 했다. 일 년이 조금 지나 남동생이 태어났다. 그때를 회상하며 엄마는 해사한 표정을 지었다.
비로소 나의 일을 다 했다
라고 생각했단다.
나의 출생과 관련된 엄마의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건 둘째도 딸인 탓에 음식으로 당한 서러움이다.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미역으로만 국을 끓였고, 보다 못한 함께 살았던 막내고모가 할머니에게 돈을 주며 미역국에 고기를 넣으라고 했다는 것도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때를 회상할 때면 엄마는 서러웠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에게 휴지를 건네거나, 손을 잡거나 아니면 그저 엄마의 옆을 지키며 힘들었겠다고 위로했다. 정작 울고 싶은 건 나인데.
서른 중반즈음 친정을 방문했을 때에도 엄마의 레퍼토리는 계속되었다. 또다시 그때를 회상하며 엄마의 눈이 붉어지고 눈물이 고였을 때, 나는 화를 느낌과 동시에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거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엄마의 레퍼토리는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썩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들을 때면 화가 나고 좌절감이 느껴진다는 말에 상담사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고 남동생이 바로 태어났다면, 엄마는 집에서 쫓겨날까 봐 두렵지 않은 채 고기가 든 미역국을 먹었을 것이고, 아빠는 후계자의 탄생에 기뻤을 것이며, 할머니는 쓸모 있는 사내아이의 탄생에 기꺼이 고기가 든 미역국을 끓였을 것이다. 마흔이 될 때까지 부정했던 딸딸아들 중 둘째 딸이라 겪었던 일들에 화가 났으며,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상담사는 분명 존재하는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들에 집중했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친구 같은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저녁을 먹은 후 엄마와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겨울에는 어묵을 먹지 못했을 것이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아빠와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고, 할머니를 따라 시골집에 머무르며 시골풍경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과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만나지도, 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것에.
상담사가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고작 그걸로?' 했다. 하지만,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마음에 남아 썩어가던 것들을 옅어지게 하고, 그 자리를 선명하게 덮기 시작했다.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뿌리를 내리며 잊고 있던 더 많은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들로 가지치기하고 풍성한 이파리를 만들었다. 어느덧 큰 나무가 된 그 기억들이 나를 감싸주었다. 큰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