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유치원에서도 동네에서도 교회에서도 예쁜 아이들은 모두 유리구두를 신는 여름이었다. 투명한 고무 같은 소재로 듬성듬성 짜인 그물처럼 생긴, 샌들과 구두 그 중간의 유리구두를 사 달라고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갈 때마다, 신발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졸랐으나 늘 실패였다. 날이 더워 놀이터에 나가지 못하고 거실 대자리위에 대자로 누워있을 때였다. 열린 현관문 너머로 집으로 들어오는 엄마와 언니가 보였다. 양 볼이 붉어진 언니의 얼굴은 일곱 살의 내가 보기에도 신나 보였다. 마치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씬처럼 느렸지만 강렬하게 걸어오는 언니의 발, 정확히는 언니가 신고 있는 유리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집으로 들어온 언니는 왼쪽 장식이 빠진 자주색 내 샌들 옆에 유리구두를 벗었다. 언니의 뒤로 엄마가 들어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언니가 벗어놓은 유리구두 한 번, 엄마 한 번, 다시 유리구두 한 번, 엄마를 한 번 쳐다보았다.
언니 신고 나면 내년에 신자
언니가 신던 신발, 입던 옷과 속옷, 메던 가방 심지어 쓰던 연필과 지우개 공책까지 물려받았다. 고작 한 살 차이였으나 키와 발이 더 작은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물려받은 건 언니에게서만이 아니었다. 양가의 사촌언니들에게서 유치원 생일잔치 때 입은 살구색 한복과 겨울 잠바처럼 입었던 빨간색 가을 재킷을 비롯해 다양한 옷들을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물려 입었다.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것들을 입고 쓰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언니는 반짝이는 하얀색 새 겨울 잠바를 입었다. 언니 몰래 잠바를 입어보았다. 눈처럼 하얀 잠바는 마치 공주님 옷 같았다. 다음 해를 기다렸으나 언니가 여러 번 눈 길에 넘어진 탓에 반짝이던 하얀색은 회색 얼룩이 많아져 더 이상 반짝이지도 하얗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삼촌에게 받은 용돈을 들고 친구와 동대문에 갔다. 두타와 밀리오레가 생기기 전이었다. 길거리에 널려진 가방들과 옷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하얀 짱구가 그려진 가방과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진 반팔 티셔츠 두 개를 샀다. 그때 나는 언니와 체격이 비슷해서 더 이상 물려 입지 않아도 되었으나, 속옷을 제외한 대부분의 것을 공유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산 내 것을 언니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가방과 두 개의 반팔티가 든 검은 봉지를 앞뒤로 흔들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방과 티셔츠를 숨길곳을 생각했다. 책상 마지막 서랍에 넣어야지 생각하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엄마와 언니에게 내 가방과 티셔츠들을 보여줘야 했다. 결국 티셔츠 두 개 중 하나는 언니가 먼저 입고 교회에 갔다.
나는, 내 것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을, 특히나 묻지 않고 사용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이것을 깨달은 건 결혼 후였다. 컴퓨터 마우스를 남편이 가져다 쓴 것이 발단이었다. 인터넷 쇼핑을 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마우스가 없었다. 한 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은 것이 남편 컴퓨터 가방에서 발견되었을 때 느꼈던 것은 분노였다. 마치 큰돈을 훔쳐간 사람처럼 몰아붙이는 내게 남편은 마우스가 가진 의미에 대해 물었다. 그때 나는 내 것이 없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남편은 여러 해에 걸쳐 끊임없이 옷과 신발 가방 등을 사들이는 내게 모두 내 것이라고,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간혹 내 물건을 써야 할 때면 꼭 먼저 물어본 후 쓰고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이제 나는 내 옷, 내 신발, 내 가방, 내 물건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그 누구도 나의 의견을 묻지 않고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일 년에 두 번 옷장과 신발장을 정리하며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을 기부하기를 몇 해, 이제 옷장과 신발장에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그래도 그때 나 정말 유리구두가 신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