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6년 봄, 호르무즈

by 이주헌

1. 봉쇄

2026년 3월 4일 새벽, 페르시아만 입구에 이란 혁명수비대 함정 열두 척이 집결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퍼졌다. 이란 핵 협상이 완전히 결렬된 다음 날이었다. 이스라엘의 선제타격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란 최고지도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국제 유가는 장중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했다. 3일 만에 30달러 이상이 뛰었다.


서울 시청 인근의 한 빌딩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 대기줄이 두 블록을 돌기 시작했다. 가솔린 가격이 리터당 2,000원에 육박한다는 소식이 퍼진 직후였다. 편의점 앞에는 부탄가스와 라면을 사려는 줄이 늘어섰다. 1973년의 기억을 직접 가진 사람들은 이미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기억하는 듯 반응했다. 인간에게는 집단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석유가 사라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배우지 않아도 아는 공포.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33~39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오만과 이란 사이에 끼인, 지도에서 찾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 물길. 그러나 그 좁은 해협에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퍼센트가 매일 흐른다. 하루 약 1,700만 배럴. 그 물량의 80퍼센트 이상이 아시아로 향한다. 한국으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숫자는 단순하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퍼센트, LNG의 약 20퍼센트가 중동에서 들어오며, 이 중동산 원유의 95퍼센트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해협이 2주 이상 막히면 한국의 정유 공장이 멈추기 시작한다. 4주면 발전소가 흔들린다. 한국의 전략 비축유는 공식적으로 208일분이다. IEA 의무 기준(90일)의 2.3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런데 이 숫자가 '안전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비축을 이렇게 많이 해야만 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에너지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역설이다.


* * *


2. 여섯 번의 충격

에너지 충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73년 10월에 닿는다. 제4차 중동전쟁이 터지고 OAPEC의 수출 금지령이 내려졌을 때, 배럴당 3달러였던 유가가 넉 달 만에 12달러로 뛰었다. 한국은 당시 에너지의 80퍼센트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충격은 직접적이었다. 경유 배급제가 실시됐고, 거리의 네온사인이 꺼졌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는 이란 혁명에서 비롯됐다. 호메이니가 권력을 장악하고 석유 생산이 급감하면서 유가가 또다시 두 배로 뛰었다. 한국은 중화학공업을 키우던 시기였다. 에너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에 공급이 흔들리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1990년 걸프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2019년 사우디 아람코 유전 드론 공격.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2026년 봄의 호르무즈 긴장. 각각의 충격이 에너지 시장을 흔들었고 한국 경제에 비용을 청구했다. 반복에는 패턴이 있다. 충격이 오면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에너지 안보 대책이 논의된다. 그리고 충격이 지나가면 관심도 사라지고 근본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비축유를 확충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대책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논리를 공유한다. 에너지를 '조달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더 많이 사다 두고, 더 다양한 곳에서 사들인다. 이것은 공급자를 바꾸는 것이지, 공급 의존이라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충격은 반복된다.


이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위기가 지나가면 긴장이 풀린다. 긴장이 풀리면 구조를 바꾸려는 의지도 함께 풀린다. 그리고 다음 위기가 오기 전까지, 기존 구조가 가장 경제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화석연료는 싸고 안정적이다. 적어도 위기가 오지 않는 동안에는 그렇다.


* * *


3. 두 나라의 선택

1973년 10월, 같은 충격을 받은 두 나라를 살펴보자. 덴마크와 일본이다.

당시 덴마크는 에너지의 99퍼센트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였다. 지금의 한국보다 더 취약했다. 그 충격이 덴마크 정치와 사회에 만든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에너지를 '싼 연료의 조달 문제'가 아닌 '국가 체질의 문제'로 보는 인식 전환이었다. 덴마크 정부는 1976년 최초의 국가 에너지 계획을 수립하고 풍력 발전에 대한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도입했다. 1985년에는 원자력 발전 계획을 공식 폐기했다. 2012년 의회가 여당과 야당이 함께 '2020년까지 전력의 50퍼센트를 풍력으로'를 합의한 후,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이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2023년, 덴마크는 풍력 단독으로 전력의 약 60퍼센트를, 풍력과 태양광을 합산하면 63퍼센트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했으며, 에너지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일본은 원자력을 선택했다. 2010년 전력의 28.6퍼센트가 원자력이었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원전은 멈췄고 빈자리는 화석연료가 채웠다. 2024년 일본은 원유의 95.9퍼센트를 중동에서 수입한다.


한국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덴마크의 길로 갈 것인가, 일본의 길로 갈 것인가.


이 질문이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있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는 향후 수십 년의 경제 구조, 산업 경쟁력, 국가 안보의 조건을 결정한다. 덴마크가 풍력 강국이 된 것은 기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에너지를 사다 쓰는 대신 만들어 쓰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 선택의 50년 후 결과가 에너지 자립이었고, 풍력 산업의 세계 1위 기업 베스타스였으며, 에너지 수출국으로의 전환이었다.


* * *


4. 개념의 문제

한국이 반복적인 에너지 위기에서 구조적 교훈을 얻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의지의 부재가 아니다. 개념의 오류가 있다.


한국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에너지 안보'의 정의는 40년 이상 바뀌지 않았다. 에너지 안보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충분히 공급받는 것'이다. 이 정의에서 해법은 하나다. 더 많은 공급원을 확보하고 비축을 유지하며 공급자와의 관계를 관리한다. 이것은 에너지를 '조달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2014년 학자 Cherp와 Jewell은 이 정의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보였다. 에너지 안보는 '충분성'의 문제가 아니라 '취약성'의 문제다.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외부 충격에 대한 시스템의 저항력—주권, 강건성,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 재정의에서 재생에너지의 위상이 달라진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시스템의 취약성 자체를 줄이는 구조적 수단이다. 태양과 바람은 중동에서 수입할 필요가 없다. 호르무즈가 막혀도 태양이 뜨는 한 재생에너지 발전은 계속된다.


그런데 한국의 에너지 법제는 이 연결고리를 명시하지 않는다. 에너지법은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며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수급 구조의 실현'을,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은 '에너지원 다양화'와 '온실가스 배출의 감소'를 목적으로 규정한다. 두 법 모두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구조적 수단이라는 명시적 조항을 담고 있지 않다. 법이 에너지 안보(취약성 저감)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연결하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그 연결은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예산 배분에서도 뒤로 밀린다.


* * *


5. 에너지 안보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한국이 매년 소비하는 에너지의 94퍼센트는 해외에서 온다. 그 수입 규모가 연간 약 185조 원(2024년 기준)이다. 이 돈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카타르로, 호주로 빠져나간다. 만약 이 에너지를 국내에서 만들 수 있다면, 수입 규모가 그만큼 줄어든다. 호르무즈 봉쇄의 충격이 그만큼 작아진다. 에너지 안보가 강화되는 것이다.


전기화는 그 경로를 만든다. 수송을 전기화하면 휘발유와 경유 수입이 줄어든다. 산업을 전기화하면 석탄과 LNG 수입이 줄어든다. 난방을 전기화하면 도시가스 수입이 줄어든다. 그리고 그 전기를 국내 재생에너지로 만들면, 연간 185조 원의 화석연료 수입이 국내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대체된다. 전기화는 탄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경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책 언어에서 전기화는 오직 하나의 프레임으로만 다루어진다. '탄소 감축을 위한 전기화.' 에너지 독립을 위한 전기화라는 언어는 없다. 이 언어의 부재가 정책의 방향을 절반으로 제한하고 있다. K-GX 추진 문서 어디에도 '재생에너지 확대로 에너지 수입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없다. 이 질문에 답하는 공식 국내 연구도 없다. 전기화가 에너지 독립의 수단이라는 언어가 정책 문서에 새겨지는 날, K-GX는 탄소중립기본계획의 이행 수단에서 국가 에너지 전략으로 격상될 것이다.


* * *


6. 과거가 현재를 가르치는 방식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역사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된다. 1973년의 오일쇼크와 2026년의 호르무즈 위기는 표면은 다르지만 구조는 같다. 화석연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가 공급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위기가 지나가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간다.


이 반복을 끊을 수 있다는 증거가 덴마크다. 덴마크도 1973년에는 지금의 한국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덴마크는 위기를 전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한 번의 선택이 50년의 궤적을 바꿨다. 기술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자원이 풍부해서가 아니었다. 에너지를 국가 체질의 문제로 보겠다는 정치적 선택이었다.

대한민국이 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 * *


7. 이 글의 여정

이 글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는 반복의 구조를 다룬다. 1973년부터 2026년까지 여섯 번의 에너지 충격이 왜 반복됐는지를 추적한다. 동력자원부의 탄생과 소멸, 에너지 거버넌스의 해체와 재편, 정권마다 리셋되는 에너지 정책의 패턴과 학계의 연구 공백이 어떻게 정책의 공백을 낳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2부는 개념의 전환을 다룬다. 에너지 안보 개념의 역사적 계보를 살피고,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안보의 적인지 동맹인지를 국제 학술 논쟁을 통해 해명한다. Månsson의 핵심광물 취약성 경고, Overland의 '포획 에너지' 논리, Jaumotte et al. 의 모델 실증을 다루고, 3부는 세계가 지금 무엇을 경쟁하는지를 본다. 덴마크의 50년, 독일의 3년, 재생에너지 지정학의 신세계에 대해 다루고, 4부는 에너지 관련 법률 개정안, 울산·여수·포항 등 산업도시 차원의 전환 로드맵, 전기화의 재해석, K-GX를 에너지 독립 전략으로 재설계하는 5대 원칙 등 처방과 대안에 대해 다뤄볼 예정이다.


또 다른 위기가 오기 전에, 이 글이 전환을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왜 에너지 전쟁에서 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