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얼마 전, 문학과 지성사에서 운영하는 합정동의 북카페에 다녀왔다. 지인과 커피를 한 잔 마시려고 하는데, 눈앞에 계절별 컨셉으로 아기자기하게 꽂혀있는 단편 소설집을 발견했다. 책장에 사두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꽤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책 구매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2200원이라는 충격적인 가격을 본 순간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구매한 책은 노란 표지에 귀여운 꽃 일곱 송이가 그려진 '소설보다 봄 2021'이라는 책이다.
최근에 1~2주간 유독 지하철을 타고 서울 곳곳을 돌아다녀야 할 일이 많이 생겼어서, 틈틈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손에 이 책을 들고 앉으나 서나 열심히 독서를 해주었다.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었지만, 한 번쯤 깊게 고민하게 만드는 구절들이 참 많은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소설이 끝날 때마다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작가분들의 인터뷰 내용 중 한 대목을 읽고 든 생각을 오늘은 적어보고자 한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소설인 '나뭇잎이 마르고' 뒤에 실린 인터뷰에서 특히나 '천사'를 자주 작품에 등장시키는 작가분께, 타작가분이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 설명을 부탁하였는데 그에 대한 답변으로 작가분은 이렇게 답하였다.
"지금 와 되돌아보니 소설 속 인물에겐 천사의 존재를 주고 싶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어쩌면 천사라 불리는 대상이 천사인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천사로 바라보는 쪽이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천사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본 것이죠. 너무도 천사의 존재를 바라는 강한 열망이 그런 시선을 만들었던 게 아닐까 하고요."
이 구절을 읽자마자 최근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의구심이 풀리면서 뒤통수를 크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요즘 나는 나에게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그래서 머릿속이 한동안 복잡했던 것 같다. 왜 이토록 나는 사랑을 세상에 외치고 싶을까. 사랑은 뭘까? 사랑을 외쳐서 내가 얻고 싶은 게 뭘까. 왜 나는 주변에 계속해서 대가 없는 사랑을 주려고 할까. 그리고 왜 사랑을 발견하려고 부단히 애쓸까. 사랑은 좋은 것이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니까 추구해야 해라는 단순한 사고에서 벗어나 정말 진지하게 나를 며칠간 무겁게 만든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어 심란해하던 찰나, 이 하나의 인터뷰를 통해 명확한 답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내가 사랑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조금 더 따뜻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대가 없이 계속해서 베풀고 싶은 마음은 결국 이런 사람들이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내 진심이 투영된 마음이었다. 설사 이 결론이 누군가에겐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고, 콩 심은 데서 콩난다처럼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나에겐 이 답을 찾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겐 '사랑'이라는 가치는 삶에서 최우선적인 가치가 되었는데, 그 이유를 사실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그냥 사랑이 좋았다. 사랑이 주는 어감, 느낌, 분위기, 발음하는 그 모습까지 너무 좋았다. 최근에는 심지어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언급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외치면서 사는 삶을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마음을 계속해서 주변에 나누어주는 일은 어쩔 땐 현타와 공허함을 남기기도 했으며, 나눠준 진심들이 가끔 바닥에 버려져 무시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면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마음이라는 것도 무한정 생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고갈이 되기 시작하면서 지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위를 멈출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궁금해졌다. 나는 상처를 받거나 지쳐도 계속해서 이 행위를 반복했다.
왜 너는 멈추지 않니.
어쩌면 나는 상처를 받아도 사랑을 나누는 이 행동에 중독이 되어버린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삶에서 더 시급한 일들이 사실 눈앞에 있는데도, 늘 이렇게 추상적인 가치를 좇으며 살아가는 내가 너무 이상적인 낭만에 빠져버린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에 타서 무작정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던 딱 이 순간 이 시점에, 처음으로 이 책이 너는 오히려 정상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잘 달려가고 있는 거야라고 알려준 것 같다.
그저 나는 내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그저 한 개인이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무모하고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목적지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작가분의 표현을 빌려, '사랑'의 존재를 너무도 간절히 바라는 열망이 '사랑'의 눈을 만들어내어서 내가 이토록 사랑을 자주 발견하고, 또 나누고 다니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삶이 충분히 자부심 넘치고 만족스럽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까지 들기 시작했다.
'사랑의 눈'
참 애정 가득하고 따뜻한 단어인 것 같다. 여러분들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가. 이번 글을 통해 여러분들도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