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글이 시작되는 곳
나무 책상 위에 똑같은 간격으로 놓인 구슬 여섯 개.
오늘 정말 뜬금없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이었다. 나는 무의식의 작용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에, 이 장면이 그저 아무런 의미 없이 떠오른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잊히지 않게 메모장을 켜서 한 문장으로 기록해 두고 이 장면이 왜 떠올랐을지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이 한 장의 사진과 같은 장면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상상은 하나의 구슬이 다섯 개의 구슬을 연쇄적으로 쳐서 움직이는 '구슬치기'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파동이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파도타기, 당구와 같은 것들로 이어지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왜 이런 뜬금없는 장면이 떠올랐는지, 또 내 상상은 왜 이렇게 이어졌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분명 어제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나름의 유사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제 하루를 간단히 말할 것 같으면, 거의 하루 종일 야외에서 지인과 떠들기만 한 하루라고 할 수 있겠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되돌아보았을 땐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걱정과 고민들이 한순간에 정리되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던 아주 의미 깊은 하루였다. 그래서 유독 홀가분하면서도 행복하게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바로 이 어제의 행복한 느낌이 한 장의 구슬 사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다.
한 개의 구슬이 어제 지인과 나눈 깊은 대화라면, 나머지 다섯 개의 구슬들은 이로 인해 변화했고 앞으로 변화할 내 생각과 행동들을 의미하고 있는 듯한 느낌. 이렇게 생각하니 사실 구슬 뒤로 희망차고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지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더불어 정적이고 밋밋한 장면이 아니라 사실 감성적인 장면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더 나아가 상상 속에서 움직여진 이 다섯 개의 구슬이 또 어떤 구슬을 앞으로 움직이게 만들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또 지금까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많은 구슬이 서로를 움직여가며 여기까지 왔을 지도 감히 가늠해보고 싶어진다.
우리네 인생이 끝없는 구슬치기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꽤나 영화 속 연출의 한 장면으로 나올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의 이 장면을 하나의 영상으로 세심하게 다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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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에 만난 시를 쓰는 지인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가끔은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반으로 점점 확장시켜 가면서 글을 써 내려가보라는 조언을 주었었다. 예상치 못하게 어떤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며칠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이런 장면이 떠올라 오늘은 도전정신을 발휘해서 생각이 나는 대로 글을 써 내려가보았다. 이 시점에서 드는 감정은, '인간'이라는 종의 사고 확장 능력에 대한 경이로움과 어떠한 경제적 지불 없이 무료로 일종의 가치 있는 문화체험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인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얻게 된 무엇보다도 가장 귀중한 사실은 글은 어디에서든지 아무렇지 않게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를 수많은 내 글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