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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Sep 08. 2022

코로나에 걸린 선생님

점심급식으로 사과가 두 조각 나왔다. 평소 같으면 과일은 한 조각 더 받아오던 내가 한 조각을 남겼다. 이때부터 내 몸이 평소와 달랐다. 


  전날 옆 반 성녀선생님(지혜와 자비로움을 겸비해서 내가 부르는 별칭)과 함께 점심 식사 후 운동장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긴 원피스 아래로 찬바람이 휙휙 들어왔다. 온몸이 떨리는 것 같았다. 짧은 산책 후 교실에 들어와 체온기를 귓구멍에 넣어 재어 보니 37.5°였다. 얼굴에서 열감이 시간이 갈수록 더 느껴졌다. 

 ‘오미크론에 감염됐나?’ 하는 생각이 들자, 교실에 있던 자가키트를 꺼냈다.

첫 번째 자가키트로 검사를 했더니 음성이었다. 믿을 수 없어서 다시 해도 역시나 같은 결과였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감염이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못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1. 부장 역할 대신 할 선생님 정하기

 2. 교감 선생님께 전화해서 병원 진료 후 확진되면 바로 시간강사 구하기

 3. 우리 반 내일 2학기 임원선거 추진하실 선생님 찾아 부탁하기 

 4. 우리 반 아이들 자료와 주간학습 안내, 컴퓨터 비번 등 수업 필요자료 정리해 놓기 

 5. 학부모님들께 아이들 내일 등교 전 자가 진단 권장하기 하이톡으로 알리기 등     

 일단 2년 전에 부장하셨던 쿨한 은아샘 교실로 가서 복도에 서서(혹시 모르니 교실에는 들어가지 않음.)

“저 아무래도 코로나 감염된 것 같아요. 자가키트로 음성이긴 한데 느낌이 안 좋아요. 내일부터 혹시 제가 안 오게 되면 임시로 일주일 동안 부장 좀 해 주세요. 2반, 3반 샘도 일이 많고, 5반 샘은 아이가 아프고, 4반 샘은 자치 일로 바쁘시거든요.”라고 말하자. 

은아샘은 “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일주일 동안 큰일은 없겠지요?”라고 시원하게 수락해주셨다.      

  다시 복도에서 체육부장님이자 교담선생님이신 배 부장님을 만났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부장님, 혹시 내일 1교시 비나요?”라고 묻자. “내일 1교시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제가 코로나 증상 있어서 오늘 병원 가려고 하는데 내일 1교시 임원선거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내가 부탁하자. 배 부장님은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안된다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방학 내내 편찮으시고 본인 수업도 겨우겨우 하시면서 매일 병원을 전전하고 계셨으니 말이다. 

  순간 내 생각, 우리 반 아이들 생각에 빠져 무리한 부탁을 한 내가 부끄러웠다.    

  

  교실로 돌아와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빨리 보결 문제를 준비해야 했다. 오늘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결과 나오는 대로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리며 내일 있을 2학기 임원선거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교감 선생님은 “그럼, 내일 아침에 출근했다가 임원선거하고 조퇴하고 병원 가서 진단을 받는 것은 어떠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그럴까요?”라고 대답할 뻔했다. 

아직은 미열만 나고 증상이 심한 것은 아니고 나 없이 회장선거가 잘 이루어질까 걱정이 밀려왔으니까.

  하지만 2년 전 코로나에 감염된 학생의 부모가 일찍 반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아서 집단항의를 받고 아주 몰상식한 사람 취급을 받아 울며불며 학교에 항의를 했었다. 또 인근 초등학교 선생님이 노래방에 갔다가 감염된 채 학교에 출근하여 반 아이들에게 집단 감염을 시켜서 뉴스에 나오고, 학교장은 학부모들에게 공개 사과문을 보냈으며 해당 선생님의 자녀 학교까지 공개되는 등 무식한 선생님이라고 얼마나 욕을 먹었던가?

  감염병 예방수칙을 교사 스스로 무시하고 출근한다면 수많은 아이에게 집단 감염을 시킬 수도 있으니 내일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죄송해요. 교감 선생님. 열이 시간이 갈수록 더 올라오고 있어서 빨리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병원에 가서 결과가 음성이길 교감 선생님도 기도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교사의 안위보다 학부모님들의 민원을 더 걱정하는 관리자인 교감 선생님의 발상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씁쓸하고 한심한 대화였다. 가끔 우리 교육자들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어리석은 판단을 할 때가 있다. 학생들의 학습권과 학부모 민원을 생각하다가 말이다.     

  학급 경영록 앞장에 포스팃에 교실 컴퓨터 비밀번호와 초등 아이스크림(초등 교육자료 사이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써서 붙여놓고, 책상과 서랍 장 사이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작년 코로나로 미뤄져서 올해 4학년(원래는 3학년 교육과정에 있는 생존 수영)도 가야 하는 생존수영강습 안내장을 E-알리미(학교 공식 안내장 알리미 사이트)로 내일 오후 2시에 발송이 되도록 예약을 걸었다. 또 내일 있을 회장 선거 투표용지를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다. 보결해주시는 선생님이 쓰실 수 있도록 했는데 도장까지 찍어 놓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늘 함께 퇴근하는 성녀님을 뒤로하고 나는 서둘러 주차장으로 갔다. 점점 더 심해지는 오한 때문에 차에 타자마자 히터를 틀었다. 집 앞에 주차하고 그 길로 병원에 갔다. 내원한 환자가 1명이라서 다행이었다. 잠시 후 코로나 검사를 원장님이 직접 해 주셨다. 집에서 할 때의 두 배나 긴 면봉으로 코 

뚫리게 구석구석 회전을 시키셨다. 1%의 균도 남김없이 면봉에 묻힐 기세였다. 

 7분이 걸린다더니 채 3분도 되지 않아 나오셔서 “코로나 맞네요.”라고 키 크고 깡마른 그러나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저 영양제 맞을 수 있나요?” 큰 현수막(비타민C, 단백질 등을 6만 원짜리)을 보며 한 대의 영양제로 코로나가 하루 만에 가라앉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물었다. 

“지금, 바로 집에 가셔서 쉬셔야 합니다. 확진되는 순간 주사 못 놓게 되어있어요.” 미소를 띠고 의사가 말했다. 

“아, 네~ ” 나만 생각하고 병원 입장을 생각 못 한 내가 부끄러워 열감으로 더워지던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병원 바로 앞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내고 바로 약국 밖으로 나왔다. 약국에 나 말고 3명이 있었고, 내가 코로나 환자임을 자각했으니 이정도 배려는 해야 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교감 선생님께 확진 소식 전하고, 교장 선생님께 전화 드리고, 보건 선생님께 우리 반 소독 부탁드리고, 같은 학년 카톡방에 올리고, 부모님들께 사과문 올리고 아이들 자가 키트 검사 부탁드리고, 어제 만난 두 명의 지인에게도 알렸다.      


  하이톡(부모님과의 메신저)으로 부모님들의 따뜻한 메시지가 속속 도착했다. 부모님들의 메시지를 보니 오한이 사라지고 마음에 온기가 퍼지면서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동학년 모든 선생님으로부터 걱정과 응원의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들로부터 선물도 받았다. 박 선생님은 목감기에 좋다는 도라지 배즙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고, 김샘은 해물 도시락과 『울림과 떨림』이라는 책을 집 앞에 두고 우렁각시처럼 사진을 보내왔다. 함께 독서 모임을 하는 김샘은 내가 책 선물 받으면 좋아해서 서점에 가서 제목이 끌리는 책을 샀다고 했다. 무엇이든 다 좋다. 역시 선물은 마음을 진짜로 꽉 찬 충만한 사랑받는 느낌이 들게 해 준다.     


 코로나에 걸렸어도 아이들, 부모님들, 동료 교사로부터 쾌유를 비는 메시지를 받으니 행복하다. 

 

일요일에 산 류시화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의 제목처럼 28년의 교직 생활 동안 수많은 상처를 입고 깊은 내상을 입었었음에도 오늘 학교가 그립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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