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은 선물 Sep 11. 2022

유연성(柔軟性), 책·사람·여행으로 말랑말랑한 우리

슬기로운 선생님 생활

유연성(柔軟性) 
사전: 부드럽고 연한 성질
옥이샘: 사실에 잘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자기 생각을 바꾸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선생님' 이란 단어만 들으면 떠오르는 말은 무엇입니까?


*잔소리가 많고 꼰대 같고 혼내는 사람

*융통성 없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감

*똑똑하고 실수가 없는 만능 박사

*패션 감각은 제로, 환경운동가

*철가방 같은 노후 연금이 중소기업 사장인 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원서를 쓸 때까지 '선생님'이란 직업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립대학에 다니던 큰오빠(현실감각이 우리 형제들 중 최고)는 여자 직업으로 선생님이 좋다면서 교대 원서를 들고 왔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서울에 사시던 고모부님이 시골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내 통지표(전부 올 수)를 보시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넌 외교관이 되거라."라고 말씀하신 날부터 꿈이 "외교관"이었던 나는

"뭔 초등 선생님? 내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교대 가면 수업료가 9만 원이야. 사립대학은 100만 원이 넘고. 게다가 취업도 100% 된다잖아. 여자들의 직업으로 선생님이 최고야. 우리 집 형편에 너랑 나, 둘 다 사립대 등록금(실력이 서울대는 택도 없었던 것이 더 문제)을 댈 수는 없잖아......"

계속되는 설득에도 난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자 큰오빠가 "사립대 외교학과 가고 자기는 군대에 가겠다."라고 했다.

밤에 울먹이며 잠을 자려 누웠는데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얘가 얼마나 큰 인물이 되려고 장남을 밟고 가려하지? "

밤새  이 말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교대 원서 내놔!"라고 소리치며 희생양 코스프레를 하며 교대에 원서를 냈다.


저도 한 때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려워하고 나의 딸과 아들도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는

 '선생님' 이 아니라 '외교관'이 되고 싶었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선생님이 된 지금, 잔소리가 많고 꼰대 같고 혼내는 사감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아 '친절한 옥이 샘'으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바르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우리 반  28명의 아이들 중 수업태도도 바르고 인성이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어떨 때는 학생들이지만 마음 씀씀이가 저보다 깊고 넓어서 존경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학생에게는 "그래, 말해봐."라고 늘 허용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말해도 그때뿐인 아이가 3~4명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박수민, 김세찬, 이다빈"하며 하이톤으로 이름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좀 더 친근한 표현으로 저의 별칭을 '친절한 옥이 샘'이라고 첫 만남 때 소개합니다. 그랬더니 혼만 내는 선생님, 무서운 선생님에서 조금 이미지가 바뀌고 있습니다. (5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교직생활 25년까지의 제자에게는 여전히 꼰대, 사람인 교사이겠지요.)

지금 있는 학교에서 3년 전, 2년 전에 가르쳤던 아이들을 급식실에서 만나면 "옥이 샘!", "친절한 옥이 샘"이라 부르면서 마스크 위에 눈웃음이 가득해서 보고 있는 옥이 샘의 밥맛이 꿀맛입니다.



똑똑하고 만물박사인 듯한 선생님, 30년 만에 보이스 피싱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창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착하고 범생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교사들도 감당 안 되는 교사도 간혹은 있지만) 도덕교과서처럼 바르게 살아가고 농협중앙회에 확정이자 적금을 선호하면서 경제관념도 뚜렷하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할 수 없는 학교라는 틀에 갇혀 있는 원시인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들 중 특히 부부교사들은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별로 없다. 남편이 사업을 하거나 회사원인 사람들은 좋은 집에 살고, 옷도 명품을 입는데 말이다(지극히 내 지인들만 본 주관적인 판단). 또 남들을 잘 믿어서 사기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옆 학교 교장선생님은 전세 계약금이 필요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줘야한다는 딸(역시 선생님)의 메시지를 받고, 수업 중인 딸을 생각하고 바로 600만 원을 이체했는데, 10분 뒤 정신 차려서 확인하니 이미 다 찾아간 뒤여서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월 1회 골프 치는 돈도 벌벌 떠셨는데 1년은 매주 칠 수 있는 돈을 날렸다면서 한탄하셨다.



선배 교장 부부는 20년 전에 토지 사기를 당해서 퇴직이 다가오는 지금도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살고 계신다. 중고 외제차를 두 분 다 타고 다니시는 데 허한 마음을 살면서 나에게 털어놓을 때면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딸과 아들이 취업했잖아요. 놀고 있는 취준생도 많은데......, "

한 선배교사는 발톱 8개가 심한 무좀으로 변형이 왔다. 나는 선배의 발가락을 보고 깜짝 놀라 "언니 피부과에 빨리 가세요. "라고 말하자

" 무좀은 죽어야 끝나는 거야. 난 위장이 약해서 독한 무좀약 못 먹어."라고 대답했다.

그 후  텔레비전에서 무좀이 뼈에 전이될 수 있고 더 나이가 들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치료가 어렵다는 방송을 알려주자 내가 다니는 피부과에 겨우 갔다.

그 후 양발을 벗고 샌들을 신을 만큼  좋아졌고  무좀약으로 위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지금은 나에게 아주 고마워한다.



후배는 재테크 붐이 불자 2021년에 친한 언니를 쫓아서 비트코인에 수천만 원을 투자했다가  반토막 손실을 입었다. 그것도 모자라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돈을 벌었다는 지인 소유의 빌라와 아파트 두채를 한번에 사겠다고 해서 사지말라고 말리고 대신 근처 부동산에서 컨설팅을 받으라고 권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고 기어코 매입했다.

절대로 속일 사람이 아니라는 후배의 믿음이 세월이 지나고도 사실이기를 빈다. 사람 잘 믿는 교사들의 특성이  드러난 투자방식이라서 걱정은 된다. 엄청난 투자를 마치 옷 한 벌 사듯이 너무 쉽게 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중학교 교사가 된 나의 선배님은 땅값은 절대로 내려갈 일이 없다면서 집도 사기 전에 땅을 샀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팔지 못하고 부인 속을 썩히고 있다. 그래도 아직도 땅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경상도 산골마을 농사꾼의 장남 마인드가 선배의 혈액의 90%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너무 착하고 고지식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닮은  두루미


교사들은 수시로 의심하고 나 자신을 경계하면서 탐구해야 한다


***플라톤은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꿈꾸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모른다. 거의 모든 고대인들은  '우리의 지각이 제한적이고 지성이 미미하며 생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인지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 교사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 아는 것 같지만 거의 모르는 고대인처럼 우리의 지성이 미미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신문도 읽고 책도 읽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여행하며 새로움을 가슴과 머리에 채워야만 한다. 교사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 이미 빛바랜 과거에만 통했던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은 무엇을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것 중에 가장 큰 부분이 우리가 모르는 것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즉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지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메이트 북스, 144쪽

유연한 사고가 교사의 필수 요건 중 하나가 될 만큼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굳어지는 사고를 책을 읽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떠나면서 변화를 경험하고 말랑말랑하게 생각을 바꿔야 하는 시대다.



작가의 이전글 슬기로운 학교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