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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Sep 10. 2022

슬기로운 학교생활

민원에 대처하는 방법

 <선생님이 된 것이 제일 후회될 때>

*아이말만 듣고 교무실로 민원전화 한 부모님들과 언쟁할 때

*학생이 말대꾸하고 대들 때

*뉴스에서 이상한 교사 한 명의 사례로 선생님들이 매도될 때



 <선생님이 된 것이 제일  행복할 때>

*아이들이 나를 만나 성장하고 있음이 느껴질 때(글씨기 공책에 나를 칭찬하는 시와 편지를 볼 때)

*우리 애들이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보여줄 때(옥이 샘~ 옥이 샘~)

*학부모님들로부터 감사 메시지(쪽지)를 받았을 때 

*동학년 선생님들이 내 수업을 칭찬하고 자료를 달라고 해서 내 존재감이 느껴질 때




  ***8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 데 늦어서 빠르게 걷고 있는데 옆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선생님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큰 학교라서 동(같은) 학년이 아니면 마스크를 쓰고 있는 통에 종종 낯선 선생님들을 뵙게 된다. “안녕하세요.”라고 얼른 대답을 했다. 4층에 있는 교실로 가는 동안 선생님은 “8개 반이나 되는 4학년 부장을 하시느라 힘드시죠?”라며 나를 위로하는 말씀을 하셨다. “의견 모으기도 어렵고, 다 모이기도 힘들어요. 선생님은 어떠세요?”라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는 1학기에 학부모 민원이 있어서 힘들어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는데 2학기에 결석한 아이가 있어서 전화했더니 저 때문에 전학 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펀치를 2번이나 얻어맞아 잠도 안 오고 밥맛도 없고 너무 힘들어요.”라고 술술 본인 이야기를 하셨다. 갑자기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 내가 머뭇거리자. 나보고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셨다. 나랑 동갑이었다. 나이를 주고받으니 갑자기 친한 친구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당시 너무 힘이 들어서 학교를 그만둘 생각도 할 만큼 힘들었고, 식욕도 없고 눈물이 자꾸 나고 매사 의욕이 없으면서 민원 생각만 하는 나를 나 스스로 느끼면서 조절이 되지 않았었다. 당시 6학년을 담임하였는데 5학년 때 담임으로부터 영수에게는 친구처럼 대하면 말을 잘 듣는다는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영수의 의견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들어주었다. 3월부터 5월까지는 그런대로 잘 지내던 아이가 갑자기 다른 애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내가 꾸짖자 아이들에게 “담임 머리를 부수겠다.”, “담임은 내 말이면 다 들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반 아이 중 15명 이상이 그 말을 들었다면서 나에게 말했다. 영수에게 물었지만 자기는 한 일이 없다고 했다. 영수는 자기 엄마는 암으로 투병 중이시고, 아버지는 화가 나면 자기를 아무 데나 때린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전화도 못 하고 전전긍긍하며 속이 상할 대로 상했었다. 부모님께 전화했더니 “우리 애가 그런 말을 할 애가 아니에요.”라고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이의 행패가 심해져서 학생에게 받은 배신감도 컸는데 부모님까지 내 말을 믿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자 영수는 수업시간에 의자를 친구에게 던지고, 영어 교담 시간에는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버리는 등 점점 더 행동이 난폭해졌다. 그 뒤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아이의 아버지와 만나 사과를 받았지만, 그때까지 3주 이상을 영수에게 모든 신경과 마음을 다 소진하면서 우울감이 밀려왔다. 학생을 진심으로 믿었는데 그래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아이는 날 이용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아이만을 믿어서 대화가 되지 않았다.


*** 나는 점점 지쳐갔다. 딸과 주말에 외식하러 갔는데 음식을 한 숟가락도 먹을 수가 없었고, 딸의 말에 울컥 눈물이 났다. 

영수는 나에게 자기만 친구처럼 대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나 혼자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대해놓고 스스로 심한 상처를 입고 허덕대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만 했다. 우리 반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교육관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었다. 문제 행동 아이에 관한 책을 다시 읽어보고 학교 상담사를 찾아가 상담을 하면서 엉엉 울었다. 상담사는 나에게 그 아이와 거리를 좀 두라고 Time out(일주일 정도 서로 거리 두기)을 하라고 하셨다. 타임아웃을 하자 아이가 당황하기 시작하더니 채 3일이 지나지 않아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어이가 없다. 수없이 거짓말을 하고도 뻔뻔하게 부모님과 나를 기만하던 아이가 내가 거리를 두자 순한 양처럼 진실을 고백한 것이다. 6학년이지만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영수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인 내가 그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난 그 아이의 무엇이든 들어주는 친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관계이다. 교사는 학생과 친구처럼 다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인 선을 지켰어야 했다. 그리고 한 아이에게만 친구처럼 대하고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 때문에 관심을 덜 주는 것도 나의 역차별이었다.      


  ***오늘 이 선생님을 보고 그때 생각이 났다. 

  선생님 손을 잡아 드리면서 “선생님 수업 마치시고 조퇴해서 댁 근처를 산책하세요. 선생님 몸속의 에너지를 끌어내야만 이겨낼 수 있어요.”라고 말씀드리면서 내 교실로 왔다.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겪은 민원 때문에 생긴 우울감은 나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넌 괜찮은 선생님이야.”라고 말해주면 10%의 에너지가 충전된다. 그런 추억들을 떠올려야만 우리는 힘든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또 운동과 산책을 하면 10% 에너지가 올라온다. 또 동료들이 응원해주고 위로해주면 또 10%의 에너지가 생긴다. 이때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 전화해서 “힘들지? 오늘 조퇴하고 집에 가서 쉬어. 그리고 내일도 힘들면 병가를 내. 그래야 학생도 학부모들도 반성하거든. 학교 걱정하지 말고.”라고 하면 또 10%의 에너지가 내 몸에 채워진다. 영수의 부모님과의 민원으로 힘들 때 우리 교감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전화해주셨었다. 그 후 난 교감 선생님과 동지의식이 생겼다. 감사해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보고 싶다.      


 ***캔디처럼 밝은 에너지를 우리에게 주었던 몇 년 전 동학년 여자 후배도 오늘 자율 휴직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후배는 시 만기(시에서 8년 근무하면 다른 도시로 전출 가야 함)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ㅇㅇ시로 출퇴근을 했다가 올해 다시 전입했다. 그녀가 전입한 학교는 원도심 학교였다. 전입 교사인 후배에게 6학년 담임이면서 부장을 하라고 해서 맡았는데 반에 ADHD 약을 복용하는 학생이 지속해서 힘들게 하다가 결국 수업시간에 도로에 뛰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곤 ‘저 애가 여기서 죽는다면, 나도 오늘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이를 무사히 붙잡아 부모님께 인계하고 학교로 돌아와 휴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니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을지 짐작도 안 간다. 


***우리 교사들은 학부모의 전폭적인 믿음과 학생의 존경으로 국민 평균수명보다 5~6년을 덜 살 만큼 자기 몸을 보살필 겨를 없이 오늘도 학교에 출근한다..

 “너 연금 받아 좋겠다.”

 “노후 걱정 없잖아.”

  친오빠들마저도 내가 은퇴 후 받을 공무원연금에 핏대를 올리면서 질투를 한다. 그러나 교육공무원 평균수명이 일반인보다 5~6년 적다는 것은 모른다. 퇴직금 없는 대신 연금 받는 것도 모른다. 대학생 자녀 학비 지원도 없고 다른 기업에 비해 급여가 낮은 것도 모른다. 단지 늙어서 퇴직하면 연금만 조금 많을 뿐이다. 오래 살아야만 연금도 그 의미가 있지만, 생각보다 교사들의 수명은 안타깝게도 짧다. 

 “오빠, 난 오빠보다 5~6년 빨리 죽어. 그래서 연금도 오래 못 받아. 그래도 부러워?” 


***선생님이란 직업을 성직자에 비유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연금도 깎이고 민원은 극심해졌으며 교사의 권위는 설 자리를 잃었다. 

  좀비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진 선생님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학교에서 아픈 학생들 못지않게 치유하여야 할 선생님들을 위한 창구가 하루 바삐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정신과에 가서 약 처방을 받는 것 말고 학교 내부에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동료들과 상담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얘들아, 선생님도 고래처럼 칭찬받아야 더 잘 가르친단다.
       


학부모님들! 제발 자녀말만 듣고 화내면서 전화하지 마세요.

       

우리 선생님들! 사람을 만드는 일은 엄청난 정신적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운동으로 몸을, 여행과 친구와의 소통으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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