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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Aug 23. 2024

사모곡,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

인사 8.  따뜻한 사람이 될게요

새벽 2:24

2024-06-07


엄마 새벽이에요.  한 시간 전에 깼어요. 그동안 잠을  못 자던 작은언니가 오늘은 옆에서  푹 자네요.  엄마 만나서 횟집에서 회와 꽃게를 사주고 미국 자기 집으로 간지 2주 만에  엄마 위독하다는 소식에  다시 왔어요. 언니는 비행기표를 못 구해 새벽에 LA공항으로 무작정 가서 취소된 표를 겨우 구해서 17시간 만에 왔어요. 왜 17시간 만이냐고요? 비행시간 14시간과 안천공항에서 대전까지 택시  탑승시간 3시간을 더한 시간이에요.


언니는 엄마의 장례식장이 다 떠나가게 심연에서 길어 올린 울음을 토했어요. 엉엉 우는 언니 뒤에서 저도 덩달아 크게 목놓아 울고 싶었은데 눈물만 나고 소리는 안 나왔어요. 크게 울어야 하는데 울지 못하는 저는  구슬프게 펑펑 우는 언니가 부럽기까지 했어요.


방금 언니가 뒤척이며 말해요. "왜 잠을 안 자? 오늘 할 일 많아서 자야 해." 시계를 보니 2시 48분이에요.  언니가 일어나서 화장실 가며 말해요. "빨리 자라 잉" 언니 말속에 엄마 말투가 있어 대답 않고, 저는 핸드폰으로  지금 계속 글을 써요.


엄마, 전 엄마가 아직도 대전 엄마집 문 앞에 나오셔서 절 기다리는 것 같아요. 아직 엄마를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아요.


엄마, 여긴 지리산 화엄사 앞 무인텔이에요. 목요일 안 6월 6일 현충일로 공휴일이었다가 금요일인 7일인 어제 하루 연차를 내면 일요일인 9일까지 사흘 연휴라서 6월 5일에 잤던 정원과 전망이 아주 이쁜 흙집 션에서 하루밖에 머물 수 없었어요.  6,7,8,9일까지 팬션은 만실이래요.  그래서 천은사 템플스테이 숙박하려고 했더니 자리가 없어서 화엄사 앞 무인텔에 투숙했어요. 무인텔은 이미지가 안 좋지만 새로 지은 곳은 깨끗하고 여자 둘이 머물긴 딱 좋아요. 차가 들어오는 순간  셔터도 내려가서 무섭지가 않아요. 언니와 둘이 다니니 무섭지 않아요. 우리 둘이 뭉치면 세계일주도 80일에 다녀올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엄마, 언니는 성당을 다니고 저는 교회를 다니는데 엄마 삼우제를 드리자마자 지리산 천은사로 달렸어요.  엄마 안 계신 대전을 벗어나고 싶었고 천은사 저수지 둘레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엄마를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숙소 예약도 하지 않고 5일 저녁 8시에 온 거예요. 지난 사흘동안 매일 천은사에 가서 기도했어요. 울 엄마, 천국에서 32년 전에 별이 된 아빠 사랑 듬뿍 받으며 사시라고요. 절에서 기도를 하는데 부처님을 보고도 마지막에는 '~아멘'으로 끝을 맺는 나를 보고 부처님 면전에서 쑥스럽게 웃었어요. 첫날은 부처님께 절까지 하다가 우리 자매는 이건 아니다 싶어서 시주와 기도만 했어요.


엄마, 엄마 추도식은  목사인 우리 시동생이 해주셨어요.  엄마가 떠나시기 5시간 전에 엄마의 단짝 친구 시촌 정순언니가 엄마에게 말했다죠? "고모, 하나님께 천국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때 엄마가 가슴에 손을 얹고 "네. 네."라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진행하자고 큰오빠에게 제안했어요. 엄마는 분명 기뻐하셨을 거예요. 걸으실 수 있을 때 대전 도마동 교회에 주일마다 가서 예배를 드리셨으니까요.


엄마, 엄마는 분명 천국에 계실 거예요. 엄마는 착하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이웃에게 베풀었던 사람이니까요. 저도 엄마처럼 내 것을 움켜쥐고 살지 않고 나누려고 노력할게요. 이미 충분히 넘치는 삶이 되었지만, 늘 부족하고 더 갖고 싶었던 욕망이 엄마와의 이별 앞에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오전 7:39

2024-06-21

엄마, 화엄사에서 쓰다가 저장한 글을 보니 벌써 14일이 지났네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요. 어제는 이현정교수님과 하는 북클럽도 참여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전 아직 여러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한가 봐요. 시계를 계속 보다가 결국 참여하지 않았어요. 내 안에 우울함이 내 몸을 나른하게 하고 좀 나아가던 오른쪽 어깨 통증도 더 심해졌어요.


아침에 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아직도 전 몸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가봐요. 자도 자도 졸리고 피곤해요.


아참 엄마, 어제는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과드렸어요. 그 선생님은 저보다 2주 전에 저와 똑같이 엄마를 우주로 보내셨는데 그때 제가 위로의 인사를 못 드렸거든요. 막상 제가 엄마를 떠나보내고 보니 얼마나 제가 무정하고 무심한 사람이었는지 깨달았어요. 나를 보면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는 몇 분 선생님을 보고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알았어요.

엄마, 이제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할 줄 아는 딸이 될게요. 엄마를 잃고 보니 이렇게 가슴이 아린데 남편이나 자식을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지 감히 상상이 안 돼요. 그들을 따뜻하게 위로할 방법은 없을 것 같지만, 어떤 노력이든 할게요. 시원한 팥빙수가 생각나면 그들과 함께 먹고요. 주말농장에서 야채를 많이 따면 그들의 집 앞에 달아놓을게요. 또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손을 잡아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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