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게 사는 것이 최고다. 불안한 도전을 하지 말고,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아라. 내가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내게 했던 말들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안정된 직장, 매달 정해진 월급, 보장된 연금. 그래서 나의 도전이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반대했다.
사실 나도 편안했다. 출근하고 퇴근만 하면 되었고, 시키는 일만 잘 처리하면 됐다. 13년 동안 내 생각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상사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 실수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큰 사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면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직장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진급할 것이고, 정년퇴직 후에는 연금을 받으며 무난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삶.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주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안정된 삶을 포기할 만큼 작가라는 직업이 큰 매력이 있는가? 프리랜서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생활, 책을 내도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그 누구도 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편안한 삶의 유혹을 떨쳐내고 나만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안전하고 확실하며 생존 가능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 속에서도, 우리는 변화를 바라고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를 잡는다. 진짜 변화가 가져올 혼란과 불확실성, 그리고 고통을 직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안전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변화 대신 익숙한 안정감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개리 비숍은 그의 책 내 인생 구하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전하고 익숙한 것에 중독된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바라지만, 결국 당신은 아는 것을 얻기 위해 진짜 원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다.”
그 말처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시간을 사용한다면, 결국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만 얻기 위해 내 소중한 시간을 계속해서 내놓아야 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나의 미래는 뻔했다. 다람쥐가 챗바퀴를 도는 듯한 반복된 일상, 출근과 퇴근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진급할 것이고, 연금으로 노후를 보낼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이 나를 발전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퇴근 후에 내가 굳이 더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노력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고,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좋은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연봉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 주변 선배들이 받는 만큼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질문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성장과 발전을 직접적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 답은 독서였고, 글쓰기였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작가가 되는 것이 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편안함은 우리를 나태하게 하고, 성장의 기회를 가로막는다. 편안함에 빠져 있으면, 우리는 결국 정체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익숙함 속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성취와 성공을 경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결국, 나는 편안함의 유혹을 거부하고 나만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편안함을 유지하는 삶은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으로 이어져,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익숙한 환경과 규칙적인 습관 속에서는 더 이상 도전할 기회가 없기에 성장은 멈춘다. 운동을 예로 들면,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점점 더 무거운 중량을 들고, 강도를 높여야만 근육이 성장한다. 같은 무게로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근육이 크게 성장하지 않는다.
편안함은 마치 두터운 담요처럼, 우리의 내면에 잠재된 가능성을 가리며 억누른다. 편안한 선택을 반복할수록 우리는 새로운 능력이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하게 된다.
불편함을 피하고 도전을 거부하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반대로, 불편함과 도전을 선택할 때, 우리는 스스로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알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해 안전한 선택을 고수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언제나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고, 안정감을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안정감이 흔들릴 때, 더 큰 불안감이 우리를 덮칠 뿐이다.
뚜껑을 열었을 때 그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이기를 기대하지 마라.
그런 기대가 결정을 미루게 하고, 새로운 결정을 두려워하게 한다.
뚜껑을 열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가슴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과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 보도 섀퍼, 이기는 습관
지금 가슴이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일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 후 무엇을 할지까지 뻔히 그려지는, 예상된 삶을 살고 있는가? 가슴을 뛰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흔히 좋은 결과만이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쁜 결과 역시 우리 삶을 더욱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내가 겪었던 나쁜 결과들이 나를 더 발전하게 해주었다.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이하고 싶지 않기에 더 노력했고,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도전하지 않고 안전한 삶만을 추구했다면, 그 두근거림조차 없었을 것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도전을 할 때마다, 우리는 설렘과 두근거림을 함께 느낀다.
지금 내가 두 번째 책을 집필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을까? 어떤 사람들이 내 책을 읽어줄까? 그 설렘과 기대는 나를 더욱 움직이게 한다. 만약 내가 예전처럼 안락한 삶을 그대로 살았다면, 이런 질문조차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전통도 없고,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해주는 본능도 없다. 때로는 스스로도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된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 남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생각은 없었고, 세상이 정해준 직업과 기준에 따라 움직였다. 스스로 정하지 않고, 남이 정해준 대로 살았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서도 의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 주변 사람들 역시 모두 그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도해서 무언가를 이룬 적은 거의 없었고, 그저 누군가 시키는 대로 살아갔다.
내가 가진 생각과 주관이 더 중요한데도, 나는 언제나 남의 충고와 조언이 내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의 길이 아닌, 남이 알려준 길을 걸어갔다. 의심하지도 않고, 그저 따라갔다. 하지만 그 길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었을까?
변화를 위해서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남의 길을 따르기보다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가치 있는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 대가는 힘들고 괴로운 고통일 수 있다. 그런 시련을 피하면 꿈을 잃게 되고, 반대로 편안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선택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지금의 삶이 편안하다면,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반면, 내가 힘들고 불편하다면, 그것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매일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불편함이다. 늦게 자고 늦잠을 자는 것이 분명히 더 편안할 수 있지만, 나는 불편함을 선택했다. 여기서 말하는 불편함은 단순히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과정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의미다. 편안한 삶의 유혹을 뿌리치는 순간, 비로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열린다.
편안함 속에서는 발전이 없다. 불편함을 선택하는 순간, 나는 매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한 걸음씩 더 나아간다. 내가 원하는 것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길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애물을 넘을 때마다 나는 더 강해지고,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