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두 손이 건반 위에 올려놓은 황금빛 가을(3)

빌헬름 박하우스의 브람스, 그리고 렘브란트가 남긴 거친 물감의 위로

by 클래식덕후문쌤

Brahms: Piano Concerto No. 2 in B-Flat Major, Op. 83: III. Andante

https://www.youtube.com/watch?v=GnGue9hdXWA



Episode.5


음반의 첫 트랙이 시작되면 먼 숲에서 들려오는 듯한


호른의 독주가 아침 안개를 가르듯 피어오릅니다.


그 위로 박하우스의 피아노가 아주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답을 건네며


거대한 1악장의 문을 엽니다.


칼 뵘이 이끄는 빈 필하모닉의 현악기들은


마치 황금빛 낙엽이 쏟아지는 듯한 두텁고 윤기 있는 소리로 그 뒤를 넉넉하게 받쳐줍니다.


이어지는 2악장은 브람스 특유의 뜨거운 열정과 투쟁이 휘몰아치는 스케르초입니다.


보통의 노음악가라면 이 격렬한 악장에서 힘에 부칠 법도 하지만,


박하우스는 결코 서두르거나 흥분하지 않습니다.


마치 젊은 날의 치기 어린 폭풍우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회상하는 늙은 거목처럼,


묵직하고 단단하게 건반의 중심을 잡고 폭풍을 통과해 냅니다.



IMG_7184.jpeg



Episode.6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이 거대한 우주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3악장,


안단테에 당도하게 됩니다.


이 악장은 피아노가 아니라 첼로의 길고 아름다운 독주로 시작됩니다.


협주곡의 주인공인 피아니스트는 여기서 스스로를 낮춥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첼로에게 양보한 채,


피아노는 첼로의 애절한 노래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그 주변을 실타래처럼 따뜻하게 감싸 안을 뿐입니다.


박하우스의 건반은 이 대목에서 타인의 슬픔을 말없이 들어주는


지혜로운 노인의 품을 연상시킵니다.


렘브란트의 붓 터치가 어둠 속에서 빛을 끌어올렸듯,


박하우스는 피아노의 가장 깊고 그윽한 울림을 끌어내어


상처받은 우리들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입니다.



IMG_7185.jpeg


이전 21화주름진 두 손이 건반 위에 올려놓은 황금빛 가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