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 그리고 카라얀이 빚어낸 바흐의 대성당
J.S. Bach: Matthäus-Passion, BWV 244, Pt. 1: No. 29, Chorale. O Mensch, bewein dein Sünde groß
https://www.youtube.com/watch?v=DoJJCOFuGIY
Episode.3
1727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연주된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음악으로 지은 가장 거대한 대성당이라 불립니다.
성경 마태복음에 기록된 수난과 죽음의 서사를
두 개의 거대한 합창단과 두 개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수많은 독창자들을 동원해 장장 세 시간에 걸쳐 그려낸 대작입니다.
바흐는 단순히 성경의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서 두려워하고 절망하면서도
끝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나약함과 숭고함을
이 음표 속에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위대한 걸작은 바흐 사후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
무려 백 년 가까이 먼지 구덩이 속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바닷가에 버려진 죽은 나무처럼 말입니다.
다행히 1829년, 청년 멘델스존이 이 악보를 발굴하여
다시 무대에 올리는 기적적인 ‘물 주기’를 실천했고,
이 곡은 비로소 인류의 곁에서 불멸의 생명력을 얻어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Episode.4
현대의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바흐의 음악을 연주할 때,
당시의 악기와 가벼운 규모를 살리는 이른바 ‘시대 연주’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규모의 인원으로 투명하고 빠르게 연주하는 것이 트렌드가 된 것이죠.
하지만 카라얀의 1972년 녹음은 이러한 얄팍한 조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카라얀은 마치 거대한 화강암을 통째로 깎아 성당을 짓듯,
수백 명의 합창단과 대규모의 베를린 필하모닉 현악기들을 동원하여
숨이 막힐 만큼 두껍고 무거운 소리의 장벽을 쌓아 올립니다.
어떤 이들은 카라얀의 바흐가 너무 낭만적이고 무겁다고 비판하지만,
적어도 타르코프스키가 <희생>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그 짓눌릴 듯한 구원의 무게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카라얀 특유의 이 거대하고 매끄러운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끊어지지 않게 부드럽게 잇는 기법)’가 완벽한 해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