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가장 무겁고 장엄한 기도-3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 그리고 카라얀이 빚어낸 바흐의 대성당

by 클래식덕후문쌤

J.S. Bach: Matthäus-Passion, BWV 244, Pt. 2: No. 39, Aria. Erbarme dich (Alto)

https://www.youtube.com/watch?v=2Zx1RnrQm4w



Episode.5


음반의 첫 트랙, 1부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합창


‘오라, 딸들아, 나를 도와 슬퍼하라’가 울려 퍼지는 순간,


우리는 무거운 십자가를 끌고 고통스럽게 언덕을 오르는


수많은 군중의 발걸음 속으로 던져집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두터운 저음 현악기들이


바닥을 무겁게 짓누르며 걷기 시작하고,


그 위로 두 개의 합창단이 파도처럼 밀려와 부딪히며 비통한 탄식을 토해냅니다.


카라얀은 이 첫 곡에서부터 감정의 무게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듣는 이로 하여금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자의


그 깊고 어두운 심연을 단숨에 목격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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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6


그리고 수난곡의 여정이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베드로의 뼈저린 후회와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통곡하는 장면 직후에 흐르는


알토의 아리아,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


이 곡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선율이자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슬픈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애절하게 흐느끼는 바이올린 독주 위로,


모든 죄와 나약함을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는 알토의 깊은 목소리가 얹힙니다.


카라얀의 지휘 아래 연주되는 이 아리아는


슬픔을 날카롭게 도려내는 대신,


마치 마른 나뭇가지 위로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보내듯


한없이 따뜻하고 관대하게 우리의 마음을 적십니다.


나약함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모든 일상적인 죄책감들이,


이 멜로디의 품 안에서 조용히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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