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우주〉와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로맨틱’, 그리고 칼 뵘의 노년
Episode.5
1악장은 새벽의 기척으로 천천히 깨어납니다.
호른이 부드럽게 등장하는 순간, 김환기의 화면에서 가장 먼저 빛을 머금은 점 하나가 떠오르는 듯합니다.
뵘의 지휘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미세한 반복이 악장의 표면을 천천히 흔들고,
그 미세한 떨림이 음악의 깊이를 더해 갑니다.
그건 점 하나가 만들어낸 여백의 떨림과 닮아 있습니다.
2악장은 더 깊은 내부로 내려갑니다.
현악기의 낮은 울림은 색이 완전히 가라앉은 밤의 표면 같고,
그 위로 떠오르는 관악기 선율은 고독이나 슬픔이 아니라
말을 잃은 인간의 내면 같은 정서를 만듭니다.
김환기의 우주도 이런 종류의 고요를 갖고 있습니다.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그저 거기 존재함으로써 도달하는 깊이.
점 하나가 아무 말 없이 빛을 내는 방식처럼.
Episode.6
3악장에서는 자연의 리듬이 살아납니다.
하지만 뵘의 해석은 그 활기를 결코 과장하지 않습니다.
숲의 생명력처럼 분명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은 늘 절제된 호흡 안에 있습니다.
김환기의 점묘에서 느껴지는 ‘질서 속의 생동감’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지막 4악장에서 음악은 다시 넓은 하늘로 나아갑니다.
밝은 힘을 드러내지만 날뛰지 않고,
현악기는 커다란 호흡으로 세계를 열어갑니다.
그것은 제국의 탄생과 몰락, 전쟁과 변화, 우주 시대의 도래까지 경험한
노 지휘자의 손끝에서만 나올 수 있는 호흡처럼 느껴집니다.
브루크너의 마지막 악장은 마침내 인간이 자연의 문턱을 넘어
더 큰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칼 뵘은 그 순간을 한 번의 긴 들숨과 날숨으로 붙들어 냅니다.
과장된 드라마 없이, 조용하고 단단하게.
3악장 - Scherzo, Bewegt - Trio: Nicht zu schnell (활동적으로 - 너무 빠르지 않게)
https://www.youtube.com/watch?v=4cnSk4ka8Yc&list=PLHMaOPmxHtFoCKra0PgNVueWy3iPLUZuq&inde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