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와 켐페가 완성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부재의 미학
- 정경화, Rudolf Kemp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 1972.5, 런던 킹스웨이 홀
Episode.1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들을 때면 마음 한쪽이 잔잔하게 흔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음악이 끝난 뒤,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감정이 남는다는 점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와 닮아 있습니다.
등장하지 않는 인물에 대한 기다림이 깊어질수록
부재의 자리가 더 분명해지는 아이러니.
이 감정은 브루흐의 음악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1972년 데카 레이블에서 남긴 정경화와 루돌프 켐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녹음은
그 감정을 가장 담담하게, 그러나 가장 확고하게 보여줍니다.
Episode.2
정경화의 연주는 늘 직선처럼 분명합니다.
쓸데없는 꾸밈이나 흔들림 없이
음 하나를 깔끔하게 세워 올리기 때문에
선율이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그녀는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대신
음 하나에 마음을 정확히 걸어두는 연주자입니다.
이런 방식이 바로 ‘부재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감’을 음악으로 만드는 힘입니다.
Episode.3
브루흐가 이 협주곡을 작곡하던 1860년대,
그는 자신에게 남을 작품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초기 악보는 화려한 기교로 가득했지만
그는 그 대부분을 스스로 지워버렸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금방 사라지는 불꽃보다
조용히 오래 빛나는 촛불 같은 음악을 남기고 싶었던 겁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 작품이 내 이름을 붙잡아주기를 바란다”라고 적은 그는
젊은 예술가의 외로움과 절실함을 담아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 마음은, 말로 설명하지 않은 채 관객을 붙잡는
베케트의 연극적 방식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1악장 - Vorspiel. Allegro moderato(전주곡, 적당히 빠른 속도로 활기차게)
https://www.youtube.com/watch?v=UwXq51sxl0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