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이 없는 경기에서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1)

클렘페러의 베토벤 교향곡 3번과 <야구란 무엇인가>

by 클래식덕후문쌤

- Otto Klemperer, Philharmonia Orchestra

- 1955.10.3-4 / 12.7, 런던 킹스웨이 홀



Episode.1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제목과 달리, 영웅적인 장면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음악입니다.


이 곡에는 단번에 승부를 끝내는 순간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긴 시간, 반복되는 시도, 실패와 수정, 그리고 끝까지 버텨야 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레너드 코페트가 그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야구를 두고


“가장 극적인 스포츠이면서 동시에 가장 인내를 요구하는 스포츠”라고 말했을 때,


그는 바로 이런 시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토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1955년에 EMI에 남긴 이 <영웅>은


베토벤의 음악을 야구처럼 들리게 만드는 드문 연주입니다.





Episode.2


1악장은 두 개의 강한 화음으로 시작하지만, 클렘페러는 이 출발을 결승타처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초반부터 모든 힘을 쏟아붓는 감독이 아닙니다.


현악은 단단히 바닥을 다지고, 관악은 조심스럽게 간격을 유지합니다.


주제는 분명하지만, 감정은 아직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코페트가 야구의 매력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의 밀도”에서 찾았듯,


이 악장도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많은 계산이 진행됩니다.


투수와 타자가 서로의 습관을 살피듯, 음악은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탐색합니다.


클렘페러는 이 긴 탐색을 성급하게 줄이지 않습니다.


말러와 함께 거대한 형식의 음악이 무너지는 순간을 직접 보아온 사람답게,


그는 처음부터 끝을 생각하며 지휘합니다.



https://youtu.be/SdwagTloRB8?si=GeGbD_GFARRYa-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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