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이 세계는 오래갑니다(3)

레고프렌즈, 브루크너 교향곡 7번, 그리고 바렌보임이 선택한 시간의 방식

by 클래식덕후문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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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6


이처럼 섬세한 균형 위에 서 있는 음악은 지휘자의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됩니다.


1992년 다니엘 바렌보임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는 이 교향곡을 신비화하지 않습니다.


템포를 극단적으로 늘이지도 않고, 소리를 부풀려 종교적인 울림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대신 각 악기가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키도록 합니다.


현악은 호흡을 잃지 않고, 금관은 앞서 나가지 않으며,


목관은 꼭 필요한 순간에만 말을 합니다.


이 연주에서 브루크너의 음악은 거대한 기도라기보다, 잘 관리되는 세계처럼 들립니다.



Episode.7


이 시기의 베를린 필하모닉을 떠올리면 이 선택은 더욱 의미심장해집니다.


카라얀 이후, 오케스트라는 이미 한 시대를 통과한 상태였고,


음악감독으로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아바도는 지배하지 않았고, 소리를 밀어붙이지도 않았습니다.


투명함과 앙상블을 중시하며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공동체처럼 다루려 했습니다.


그런 흐름 한가운데서 바렌보임은


푸르트벵글러의 계보를 의식한 긴 호흡과 구조적 해석을 놓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출신이었지만,


음악적으로는 독일 낭만주의의 시간 감각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계승하려 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연주를 들은 푸르트벵글러가


음악적 사고력과 감수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전설이 아니라,


여러 기록과 당사자의 증언으로 확인되는 사실에 가깝습니다.


공식적인 사제 관계는 아니었지만, 바렌보임에게 그 만남은 평생의 기준점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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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8


이제 잠시 음악에서 눈을 돌려 전혀 다른 세계를 떠올려 봅니다.


덴마크를 상징하는 완구 기업 레고입니다.


레고는 완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장난감을 만듭니다.


부수고, 다시 만들고, 또 바꿀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한 번의 결과보다 반복과 지속을 전제로 한 구조입니다.


덴마크 사회가 중시해 온 안정과 지속의 가치가


이 작은 블록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3악장 - Scherzo. Sehr schnell - Trio. Etwas langsamer(스케르초, 매우 빠르게 – 트리오, 약간 느리게)

https://www.youtube.com/watch?v=_kGbOyMY-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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