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이 세계는 오래갑니다(4)

레고프렌즈, 브루크너 교향곡 7번, 그리고 바렌보임이 선택한 시간의 방식

by 클래식덕후문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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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9


레고 프렌즈 시리즈는 이 철학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적 삶의 방식이 이 세계의 규칙으로 채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곳에는 지배하거나 정복하는 인물이 없습니다.


대신 돌보고, 연결하고, 조율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갈등은 배제되지 않지만 폭력적으로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대화를 통해 다루어지고, 관계는 단절되기보다 유지됩니다.


아이들이 레고 프렌즈로 노는 모습을 보면,


놀이의 목적이 이기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카페를 꾸미고, 동물을 돌보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안정감으로 작용합니다.


레고 프렌즈의 캐릭터들은 영웅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작은 일을 해내는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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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10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음악에는 영웅이 없습니다.


선율은 서로를 압도하지 않고, 악기들은 앞서 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전체를 떠받칩니다.


바렌보임의 해석은 이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이 음악을 몰아가지 않습니다.


음악이 스스로 유지될 수 있도록 곁을 지킬 뿐입니다.



4악장 - Finale. Bewegt, doch nicht schnell(피날레. 생기를 가지고, 그러나 빠르지 않게)

https://www.youtube.com/watch?v=G6Tw7FPeR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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