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프렌즈, 브루크너 교향곡 7번, 그리고 바렌보임이 선택한 시간의 방식
Episode.10
바렌보임이 음악 바깥에서 보여준 행보 역시 이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그가 팔레스타인 출신 지식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시작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실제로 이스라엘의 젊은 유대인 음악가들과 팔레스타인의 젊은 음악가들,
그리고 주변 아랍 국가 출신 연주자들이 함께 모여 만든 오케스트라입니다.
이름은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뜻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명칭은 괴테의 시집 제목에서 가져온 것으로,
서쪽과 동쪽이 대립이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세상을 단번에 바꾸겠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 말을 섞지 않으면 평생 만날 일 없었을지도 모를
젊은 연주자들이 같은 악보를 앞에 두고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만듭니다.
레고 프렌즈의 세계처럼, 승리보다 지속을 먼저 생각하는 시도입니다.
Episode.11
자연스럽게 자클린 뒤 프레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영국의 장미’라 불리던 그녀는 음악사에서 가장 강렬한 첼리스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던 젊은 시절의 뒤 프레는,
그 한 곡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시대를 남겼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삶은 매우 짧았습니다.
병으로 인해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음악은 그녀의 손에서 너무 이르게 떠나갔습니다.
바렌보임과의 결혼은 당시 큰 화제였고,
유대인 피아니스트와 영국의 스타 첼리스트라는 조합은 음악계 안팎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삶은 예술만큼 빛나지 않았고, 뒤 프레의 생은 점점 고요해졌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예술가의 삶,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Episode.12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대비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관계는 때로 끝까지 유지되지 못하지만,
음악은 다른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바렌보임은 개인의 삶에서 모든 것을 붙잡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음악에서는 끝내 머무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Episode.13
그래서 바렌보임의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은 위대한 사건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세계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폭발할 필요는 없다고.
조용히, 그러나 크게, 오래 버티는 방법도 있다고.
Episode.14
레고 프렌즈의 도시와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은 전혀 다른 장르에 속해 있지만,
같은 철학을 공유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철학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세계가 가장 오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