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방랑이 위대한 교향곡이 되기까지(1)

사이먼 래틀의 말러,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by 클래식덕후문쌤


말러 교향곡 2번 1악장 - Allegro maestoso. Mit durchaus ernstem und feierlichem Ausdruck(장엄하고 당당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지극히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USMAGPiueac&list=OLAK5uy_mRWqpET7Bl-OXSyDBt9EdX6azqOBwmC0k

- Simon Rattle, 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 1986.5/6, Watford Town Hall



Episode.1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가끔 한 인물의 등장으로 그 흐름이 바뀝니다.


1986년, 당시 서른둘의 사이먼 래틀이 변방의


오케스트라였던 버밍엄 심포니와 함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가 그랬습니다.


런던이나 빈, 베를린 같은 화려한 중심지가 아닌 영국 중부의 소박한 공업 도시 버밍엄에서,


그것도 EMI라는 전통 깊은 레이블을 통해 울려 퍼진 이 소리는


래틀이라는 이름 앞에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미리 가져다 놓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래틀은 이 음반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의 관습에 기대지 않습니다.





Episode.2


그는 악보라는 텍스트를 마치 처음 발견한 지도처럼 대하며


그 속의 미로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 지독한 세밀함은 제임스 조이스가 그의 소설 <율리시스>에서


더블린이라는 도시의 단 하루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인간 존재의 모든 층위를 복원해 낸 과정과 기막히게 닮아 있습니다.


조이스가 언어의 한계를 시험했듯,


래틀 역시 오케스트라가 낼 수 있는 음향의 한계치를 끝까지 밀어붙이며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Episode.3


말러는 이 곡의 1악장에 ‘장례식(Totenfeier)’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래틀의 해석에서 이 대목은 단순히 슬픈 장송곡에 머물지 않습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긁어내는 거친 보잉은 마치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이 묘지를 걸으며 느끼는


삶의 비루함과 죽음의 공포를 날것 그대로 전달하는 듯합니다.


래틀은 소리를 미화하거나 억지스러운 감상에 젖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마치 현상학적으로 관찰하듯,


지극히 명징하고도 서늘한 긴장감을 유지할 뿐입니다.


래틀은 버밍엄의 단원들에게


이 악장의 리듬을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발걸음’으로 연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집요함 덕분에 우리는 1악장의 마지막 음이 사라지는 순간,


마치 거대한 무덤 앞에 홀로 버려진 듯한 지독한 고독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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