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도시, 낮은 의자위에서 부르는 노래(3)

불면의 밤을 위한 바흐, 침묵을 그리는 호퍼, 글렌 굴드의 마지막 귀환

by 클래식덕후문쌤

Goldberg Variations, BWV 988: Variation 12 Canone alla Quarta

https://www.youtube.com/watch?v=ACxkDXLCxXY&list=PLxV6VwFCe969YrUNVkVfL7qyNN9sO41Ct&index=13



Episode.7


1981년 글렌 굴드의 연주가 바로 그렇습니다.


26년 전, 질주하던 청년 굴드는 이제 노년에 접어든 현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는 건반을 누른다기보다, 음표와 음표 사이의 빈 공간을 어루만집니다.


호퍼의 그림 속 그 텅 빈 거리처럼, 굴드는 음악 속에 거대한 ‘여백’을 만들어냅니다.


그 여백은 쓸쓸하지만 따뜻합니다.


마치 호퍼의 또 다른 그림 ‘아침 해(Morning Sun)’에서


침대 위에 앉은 여인에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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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8


굴드의 녹음 현장을 상상해 봅니다.


그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낡은 의자를 평생 끌고 다녔습니다.


다리를 10센티미터나 잘라내어 삐걱거리는 그 볼품없는 의자에 앉아,


그는 피아노 건반과 코가 닿을 듯 웅크린 자세를 취합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려는 태아처럼,


혹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기도를 올리는 수도사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귀를 기울이면 들려옵니다.


굴드의 ‘허밍’ 소리입니다.


피아노 선율을 따라 입으로 흥얼거리는 이 소리는


음반 엔지니어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굴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소리가 내 연주의 일부”라고 말하면서요.


1981년 녹음에서 들리는 그 나지막한 웅얼거림은,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독백처럼 들립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녹음실,


그 적막한 밀실에서 기계장치인 피아노와 인간인 굴드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바로 그 허밍이었던 겁니다.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고독한 한 인간이 내뿜는 숨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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